내가 정말 아끼던 거였는데
전 여자친구 셋이 결혼했다. 나는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몰랐고, 훔쳐봤다. 당연히 청첩장은 받지 못했다. 분명 한 때 서로 안달복달했던 사이었는데 좀 야박하다 너네. 내가 나눠갖지 못한 결실의 기쁨이 웨딩포토에 담겨있다. 한 뼘씩 자라는 게 비단 아이뿐일까. 나만큼 멋진 남자들과 팔짱을 끼고 어떤 걸음을 걸었을지 궁금해진다. 추억은 방울방울 수박 향을 내고 후회는 그 아래 희미하게 남은 주스얼룩 같다. 시간은 참 잔인해.
나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됐다. 이건 나만 느끼는 숲의 생체 리듬. 다들 요즘 누가 서른에 벌써 가냐, 3년만 더 있어 봐라 참견하지만 계절이 변할수록 나무처럼 확고해진다. 서른은 다 자란 나이가 아닌 건가? 근데 이 숫자가 왜 이렇게 지겹지. 지지는 새끼손가락만큼 쉽게 부서지고 애정은 유통기한이 갈수록 짧아진다는 걸 내가 여실히 느끼고 있는데. 당신들을 믿지 않겠다. 늦어도 삼 년 안에 나는 반드시 유부남이 되어야'만' 한다.
사회 속 인간을 다섯 단계로 분류한 어른이 말했다. 결혼은 3단계, 출산은 4단계라고. 그럼 마지막 단계는 뭐예요? 죽음. 서글펐지만 일리가 있다. 4와 5 사이의 긴 공백은 내 주니어들의 4-1, 4-2, 4-3을 겪으면서 채워진다고. 그들이 내 숲을 뭍으로 확장한다고. 그럼 나는 여태 2단계에 머물러 있는 레이스의 반환점조차 도달하지 못한 후발주자. 누가 남자는 서른부터 숙성된다고 했는가. 나는 나날이 상하고 있다.
삶의 불안정성을 결혼이 주는 책임감으로 지속하려는 건 아닌가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 내 작은 떡갈나무 숲에 불을 지르는 일. 얘야, 어떻게든 살아진다. 선조들의 지혜가 귀에 가닿지 않는다. 남들 다 하는 노동을 반복하는 것조차 버거운 우리들에겐 자의적 선택처럼 보이던 결혼도 앞자리 숫자가 바뀌면 비교 범위에만 속하는 것 같다. 근데 비혼은 차치하고 비연애마저 흔해 보이지 않는데. 빌어먹을 요즘 것들. 빌어먹을 MZ.
있어서 불편한 것보단 없어서 외로운 게 낫지 않을까. 내가 내 마음을 속절없이 놔버렸구나, 메트로놈도 못 잡는 BPM으로 친절함을 잃는다. 사람들은 의미만 있으면 돈 내는데 주저함이 없어 기어이 결혼을 유상의 탐험으로 만든다. 축의금을 모조리 거절하고 하객을 최소화한 스몰웨딩이 내 꿈인데. 그게 더 비싸단다. 피어오른 화촉 사이로 너와 내가 입장한다. 도저히 멈출 수밖에 없는 몇몇 장면이 식전영상으로 출력된다.
한 어리숙한 어른은 내가 부모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대기업에 다니며 키가 180은 되기 때문에 1등 신랑감이라고 했다. 그 어이없는 주장에 어느 정도 동감한다. 하지만 나는 흡연자고 탈모가 진행되고 있으며 성질이 예민하다. 이 중 단 하나 때문이라도 나는 1등이라는 수식어와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아니, 그 이전에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의 수준은 되는 걸까. 서른 되면 괜찮아진다면서요.
애열의 종착지를 준비한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영원, 평생을 조립하는 과정일까 아니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갇히는 것일까. 집, 차, 상황이 꼭 들어맞아야만 밀봉할 수 있는 계약인 건 분명 아닐 텐데. 귀한 진실과 널린 보편은 서로 돕지 않는다는 좌절이 고개를 빼꼼 내민다. 다정함도 슬픔도 누가 누가 큰 지 재봐야 안다니. 그냥 문을 철컥 잠그고 숨으면 안 되는 걸까. 아무도 없는 여기서, 우리 한숨 자는 건 어때.
너네는 지금 어떤 신혼집에서 살고 있을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자라온 걸 이젠 후회하진 않겠지? 5지선다 문제에서도 연필을 굴리다 끝내 3번을 찍고 말았던 우리도 각자 다른 곳에서 나름의 중산층을 조성하고 있겠지. 실은 더 가지고 싶었는데. 이만하면 됐어, 스스로 발을 멈췄다. 그만하면 됐다였음을 결혼소식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식장의 주인공이 아님을 인정하게 만드는 뻔한 드라마의 문법. 그럼 이만, 그만.
클라우드를 비운다. 언젠가 다시 만나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늦은 이유에 늦은 변명이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첫 만남을 없던 일로 만들진 않을 거다. 그것이 온당하다. 그저 한 철의 정거장 중 하나로 수고했다, 멀리서나마 전한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물성을 잃어가는 것도 사랑이라 여겼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게 믿는다. 비록 나는 1등도, 신랑감도 아니지만 나름 보배로운 숲이 됐다. 여러분 덕이다. 결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