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우 Nov 20. 2023

땅 사진 동호회

 2학기가 시작되고 FPS 게임 동아리가 학내 분위기를 지배하자 그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W는 의아함과 외로움을 느꼈다. 휙휙 돌아가는 화면에 디지털 멀미를 겨우 견디면서 뭐가 그렇게들 재밌는지 강의실이 아닌 PC방으로 출석 도장을 꽝 찍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온라인 세상 속에서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는 트레이닝복을 갑옷으로 커피를 HP포션으로 개조했다. 그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번졌다. 학점과 레이팅을 맞바꾸는 사람이 늘었다.


 그 유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내심 부러웠던 W는 학내 새로운 소모임을 창설했다. 돈이 없어도 체험할 수 있는 일상 속 이야기가 머물고 취미/특기 란을 채우기엔 애매하지만 진짜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하러 떠나는 오밀조밀한 여정이 있는 곳. 말을 고르는데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1이 언제 사라질까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관계망이 긴요한 사람들이여 오라. 이름하여 ‘땅 사진 동호회’는 그렇게 5명의 적은 인원으로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혼자가 아닌 ‘나’는 당연하게도 위로를 위에서부터 찾는다. 맑은 하늘은 과연 희망차다. 하지만 너무나 낙담한 나머지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사람은 부모님의 떨어지는 꾸지람 아래 바닥의 무늬만 살피는 아이처럼 땅을 본다. 땅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본래 그 자리에서 자라나는 것뿐만 아니라 자의와 타의로 떨어진 많은 것들이 있다. 곰곰이 관찰하다 보면 하늘만큼 타당한 위로를 찾을 수 있다. 땅은 마냥 낙관적이지도 않다.


 당신이 아스팔트 위에 진하게 그어진 주정차선을 찍는다면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냥 색감이 예뻐서 담았을 수도 있다. 당신이 거친 흙과 몇 포기 잡초를 찍는다면 외로움을 손바닥에 쥐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물론 그저 목가적인 감성이 있어 보여서 일지도 모른다. 지겹지 않기 위해 건네는 스몰 토크마저 지치는 사람에게 땅은 그 속성만큼 단단한 ‘그냥’을 조탁해 준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반대로 어떤 일에는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W만큼 땅 사진 공유에 열을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차츰 공유되는 이미지가 줄어들더니 어느 기점에는 새해 인사 정도나 건네는 사이처럼 흐려졌다. 말도 하는 사람만, 반응도 하는 사람만 한다. 생성 이래 여태 지워지지 않은 숫자도 하나 있다. 아마도 그녀만큼 땅 사진 동호회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그게 더 쿨해서 좋았다.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사진 하나를 띡,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내 몸 하나 누일 땅 한 구석을 얻으려 살아가는 이 중에 아래를 자세히 살피는 사람은 적다. 물성을 담은 집보다 소유하기 힘든 부동산 자체로의 값만을 생각해서일까. 매일 같이 밟고 지나가는 것에 대한 환기가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 삶. 느리게 걷기와 러닝의 출처는 발 밑에 있다. 그럼에도 땅은 힐링의 풍광에서 빈번히 제외된 것 같다. 하늘 포토 덤프에 비교하면 ‘땅 힙스터’는 서브컬처다. 우러러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일까.


  남들 다 보는 유튜브보단 팟캐스트가, 슬래셔 무비보단 1시간 30분 내외의 느릿한 일본 드라마가 어울리는 사람에게 새 시작을 고하는 땅 사진을 받았다. 12월을 향해 날쌔게 달려가는 시간 아래 작은 발 한 짝과 붉은 낙엽들이 있다. 그 풍경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지만 너저분하지 않다. 바짝 엎드려 조마조마함을 느낀 날과 그래야 할 날들이 앞으로도 무수하게 있겠지만 나아질 거라는 위안, 당연하다. 그보다 좋은 일이야 보나 마나 있을 테니까. 마음이 탁 내려앉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을 때 하는 말과 싫을 때 하는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