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어쩌면 하늘의 뒷면
2학기가 시작되고 FPS 게임 동아리가 학내 분위기를 지배하자 그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W는 의아함과 외로움을 느꼈다. 휙휙 돌아가는 화면에 디지털 멀미를 겨우 견디면서 뭐가 그렇게들 재밌는지 강의실이 아닌 PC방으로 출석 도장을 꽝 찍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온라인 세상 속에서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는 트레이닝복을 갑옷으로 커피를 HP포션으로 개조했다. 그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번졌다. 행복의 비결은 포기에 있다더니. 학점과 레이팅을 맞바꾸는 사람이 늘었다.
그 유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내심 부러웠던 W는 학내 새로운 소모임을 창설했다. 돈이 없어도 체험할 수 있는 일상 속 이야기가 머물고 자기소개서 안 취미/특기 란을 채우기엔 미적지근하지만 진정으로 내가 선망하는 것들을 찾아 떠나는 오밀조밀한 여정이 있는 곳. 말을 선별하는데 시간을 과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누가 읽었을까 두근두근 거리지 않아도 되는 작고 안전한 관계망이 긴요한 사람들이여 오라. 이름하여 ‘땅 사진 동호회’는 그렇게 다섯 명의 적은 창단멤버로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혼자가 아니라도 ‘나’는 위로를 위에서부터 찾는다. 맑은 하늘은 과연 희망차다. 하지만 너무나 낙담한 나머지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사람은 부모님의 떨어지는 꾸지람 아래 바닥의 격자무늬만 살피는 아이처럼 땅을 본다. 땅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본래 그 자리에서 자라난 것뿐만 아니라 자의와 타의로 떨어진 많은 것들이 있다. 흠집만 봐도 내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건조하게 내려다보면 하늘만큼 타당한 위로를 찾을 수 있다. 땅은 마냥 낙관적이지도 않다. 땅은 유실물 보관소이자 낡은 책상이다.
당신이 아스팔트 위에 진하게 그어진 주정차선을 찍는다면 답답함을 느끼는 중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냥 색감이 예뻐서 담았을 수도 있다. 당신이 거친 흙과 몇 포기 잡초를 찍는다면 외로움을 손바닥에 굴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저 목가적인 감성이 그럴듯해 보여서 일수도 있다. 지겨움을 탈피하는 스몰 토크마저 지치는 사람에게 땅은 그 속성만큼 단단한 ‘그냥’을 조탁해 준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반대로 어떤 일에는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이름을 붙여 말하면 이유가 된다. 이것이 땅 사진 동호회의 너바나.
W만큼 땅 사진 공유에 열을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멤버는 늘었지만 차츰 공유되는 이미지가 줄어들더니 어느 기점에는 새해 인사 정도나 주르륵 이어 붙이는 사이처럼 흐리멍덩해졌다. 말도 하는 사람만, 반응도 하는 사람만 한다. 생성 이래 여태 지워지지 않은 숫자도 하나 있다. 아마도 그녀만큼 땅 사진 동호회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그게 더 쿨해서 좋았다.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사진 한 장을 띡,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상실에도 순기능이 있다.
내 몸 하나 누일 땅 한 구석을 얻으려 살아가는 이 중에 아래를 자세히 살피는 사람은 드물다. 골격을 갖춘 집보다 소유하기 힘든 부동산 자체의 값만 생각해서일까. 매일 같이 밟고 지나가는 지반에 대한 환기가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 삶. 산책과 러닝의 출처는 발 밑에 있다. 그럼에도 땅은 힐링의 사연에서 빈번히 제외된 것 같다. 하늘 포토 덤프에 비하면 ‘땅 힙스터’는 서브컬처다. 우러러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일까. 젊음이란 단어를 끝내 놓지 못하는 때늦은 어른들 같다.
남들 다 보는 유튜브보단 팟캐스트가, 슬래셔 무비보단 한 시간 이십 분 내외의 느릿한 일본 드라마가 어울리는 사람에게 새 시작을 고하는 땅 사진 하나를 전송받았다. 12월을 향해 날쌔게 달려가는 시간 아래 작은 발 한 짝과 붉은 낙엽들이 있다. 그 풍경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무럭무럭 죽어갔다. 다행히 그리 너저분하진 않다. 바짝 엎드려 골몰함을 느낀 날과 그래야 할 날들이 앞으로도 무량하게 있겠지만 나아질 거라는 위안, 당연하다. 그보다 좋은 일이야 보나 마나 있을 테니까. 분모가 큰 마음이 탁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