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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08. 2024

산밤과 이삭의 속마음


산밤과 이삭의 속마음


구두에 광낸 듯

반짝 말끔한 산밤 신사와


겸손히 고개를 숙였다는

벼 이삭 숙녀의 속마음 이야기





산밤 신사:


뽀직 뿌직 빠직

산밤 나무 아래 퍼지는

속 시원한 소리

들어보셨소


갑갑했던

가시 넥타이 풀어

친절히 셔츠깃도 벌려 준 그대

젠틀한 그 양발 스킬에

꽤나 감동했지모오

정말 고맙소

이제야 좀 숨을 쉬겠어


코딱지만한 단칸방에서

옴짝달싹 못허고

둘이 꽉 껴안고 잠든 세월이

한 두 해가 아니라오

좋은 것도 하루이틀이지 않겠소?

야박한 밤송이 주인네는 널찍한 거실도 있더만

우리는 애들까지 셋도 넷도

한 방에 지내느라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지

일 년 내내 부둥켜 살려면

땀은 또 얼마나 삐질 거리게

뭐 그 덕에 얻은 갈구릿빛 물광피부는

가문의 자랑이긴 하오


허나

이 참에 말 좀 합시다

왜 가을까지 참고 참아야 찾아오는 거요

힘들다 굳이 말하기 전에

미리 좀 들여다 봐주고 그럼 안되나


그러니

가을밤 집착은 이제 좀 버려 주시요

당신도 서둘러 맛보고 싶은 맘 내 다 아오.

여름밤은 안되겠오?

한 여름밤의 크리스마스는 된다 들었오





이삭 숙녀:


도골도골

농익은 쌀알갱이

잔뜩 살이 쪄 목디스크 걸리겠는데

사람들은 자꾸 내가 겸손하대요

수건이나 목에 걸어

경추 펴기 운동이나 좀 도와주시지요

농부아저씨 수확하러 오실 날

밤낮으로 기다리건만

강 건너 벼구경하듯

카메라 셔터나 누르는 당신은

너무 야박한 거 아닌가요

가체(加髢) 얹은 중전도

잠잘 때는 댕기머리 해주었단 말이죠


그리고 있잖아요

사람들은

후둑후둑 떨어진

노란 낟알들만

이삭인 줄 알아요

이삭이 예쁘다곤 안 하고

이삭을 줍는다고만 하잖아요


내 이름 원래부터 벼이삭인데

평소엔 나를 이름 빼고 ‘벼’라고 성만 부르더라고요

정 없게 말이죠

난 그 예쁜 이름 맘에 드는 걸


영어로는 아이작(isaac)이라나

이삭은 ’ 웃음‘이란 뜻까지 담겨 있댔어요

“에잇 아가씨 바보야?

아가씨 영어이름은 Rice ears 요“

“뭐라고요? 내가 쌀 귀때기라고요?

아저씨!

지금 나랑 한 판 하자는 거예요? “


이삭 싸대기 벼바밥

알밤 공격 바밤밤




햅 하고

햇 한

맛있는 가을전투

누가 이겼게요?



#햅쌀   #햇밤

#힙쌀   #핫밤

#전지적 산밤과이삭시점

#익어가는 가을

#웃어가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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