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은
봄부터 무척 어수선했다.
냉전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적성 국가이던
중공 민항기가 무단으로 넘어오질 않나,
KBS에서 기획한 이산가족 찾기로
온 나라가 눈물바다가 되지 않나.
뒤숭숭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입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군대 생활을 앞두고
미래를 위해 뭘 준비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어쩌다 국문과 여자 친구가 전화라도 해주면
만나서 시간이나 죽이는 정도가 중요한 일과였다.
그 친구와의 관계 설정 따위는 생각할 수 조차 없었다.
서로 알게 된 지도 얼마 안 되었을뿐더러,
그런 생각으로
전도가 양양한 그의 장래에 방해가 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랬던 것 같다.
한 번도 먼저 만나자고 연락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연락처를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랬다.
연락이 오면 만나는 정도였다.
그것도 그가 지적해 주었을 때,
‘아~ 그랬구나.’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뜬금없이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비에 젖은 포도, 자동차의 불빛, 차고 스산한 바람, 허황하던 동성로의 불빛, 그 거리, 사람들의 물결, 바람에 흩날리던 휴짓조각, 그 하얀 껍데기, 창백한 가로등에 길게 늘어진 긴 그림자, 텅 빈, 사각의 공간, 같이 있던 이마저 떠나버린, 적막과 고요만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어두운 방문을 열고 형광등의 스위치를 올릴 때까지의 짧은 시간, 차라리 불을 켜지 말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네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아 펜을 들긴 했는데, 이젠 네게 다시 동전 두 개를 넣으며 다이얼을 돌릴 기력마저도 없으니까, 언젠가 학교로 왔던 네 주소를 생각해내고 이사 틈에 처박았는지 네 주소를 찾아 삼만리를 하는 바람에 한참이 걸렸다.
(중략)
그동안 너는 숱하게 많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려 왔다고 생각한다. 너는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그것이 언제까지 가나, 어느 선까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릴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스스로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애초에 너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것들이 가능한 만큼 내가 잘났다고 생각한 때문이리라.
결국, 나 스스로 모순 때문에 나는 스스로 상처를(이건 너무 거창하다), 그리고 자존심을 상해버린 것이다. 평범한 여자로서 말이다. 난, 이런 걸 느낀다는 건 유치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 역시 위대하지 못한 인간이기 전에 여자인 모양이다.
스스로 남녀 간의 인간적인 만남은 부정하고 있으면서도, 믿고 있는 모순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인정한다. 난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못되고 사소한 일로 감정 상하고 자존심 상하고 울적한 여자임을.
언젠가 네가 물었던 것 같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그런 걸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것 같고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골치 아프고 귀찮고 그런 것들로 하여 머리 아픈 기억들이 몸서리쳐지기 때문이다. 잘해야 본전인 시달리기만 한, 그래서 어느 때부터 인가 마음속에 독버섯이 자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화근이라고 잘라버려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지만, 그것이 커가는 걸 느끼면서 나는 스스로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인간은 자기모순 속에서 사는 것이다. 너도. 모두다…….
네게 전화하고 다방 정해주고 시간 정해주는 것에 지쳐버렸다. 다시, 그런다면 오기이지 인간애가 아니란 걸 안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다. 75*-37**.
이것이 내 전화번호다. 네가 한 번도 물어주지 않은.
우습다. 산다는 것이. 이러는 모든 것들이. 너의 승리와 나의 패배를 인정하고 다음 주엔 태종대나 다녀와야겠다. 그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또 한 번 산다는 것에 대해 허탈함을 느끼고 다시 이 지긋지긋한 도시로 돌아올 것이다. 밉다. 너의 그 여유마저도…….
잘 자라. 좋은 꿈 꾸고. 1983.7.9.
한 단어도 굳이 정돈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옮긴 그의 편지 전문이다.
'아~ 미숙한... 배려였구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인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를 연인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잃고 싶지도 않았다.
이기심일까.
우선 태종대에서 돌아온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친절하지 않았다.
만나서 내 생각을 전했다.
아직 연인은 아니지만,
좋은 친구라고, 널 잃고 싶지 않다고.
난 내일 떠날지 모레 떠날지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그렇게 봉합은 되었다.
이후 바뀐 게 있다면 가끔 내가 먼저 전화하는 정도였다.
그가 알려준 그 번호로.
스물셋, 그것이 그에 대한 진짜 내 마음이었다.
복잡한 마음이었지만 그는 내게
“여자”가 될 수 없었다.
연인같은 좋은 친구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1983년 이야기는 더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