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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 1983년(6)

by 신화창조
러브.jpg

그 아이를 만난 순간부터

나의 회색 시간이

아주 조용히 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그해 여름,

뜨거운 아스팔트도 따듯해졌으며

햇빛도 찬란했다.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대학을 휴학 중이던

그 아이도 힘든 시절이었고

나와 같이 구름 위를 함께 걸었다.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그렇게 즐거운 나날 속에서도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사이.

남기지 않고 가야한다는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난 군대 가기 전의 인생과

다녀온 후의 인생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책임도 못 질 장래를 위해

어떤 감정의 흔적도, 잔향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스물셋 다운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인생은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뭘 그렇게 나누고 버리려고 했는지

순리대로 흐르게 두면 되는데...


고집스럽게도,

무책임한 약속 따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채웠다.


그런 이야기를 그 아이에게도 전했다.

동의도 받았다.

그리고

둘 다 현실을 외면했다.

좋으니까 만나고

보고 싶으니까 찾기를 반복했다.


7월 말, 드디어 영장이 나왔다.

8월 19일 논산 훈련소 입대, 영천역 집합.


아쉬운 건 없었지만 그 아이를 두고 간다는 게...

억장이 무너지고 부서지고 내려앉았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8월 초,

담담하게 그 아이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이

그 아이를 위해서 옳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 아이가 서럽게 울었다.


누차 예고했던 터라 서로 받아들였다.

“잘…. 지내라.”


입대하기 열흘 남짓,

연락할 수 없었던 날들.

지옥이었으며 형벌이었다.


이를 악물고 연락하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약속했으니까...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우왕좌왕 어쩔 줄 몰랐다.

술을 참 많이 마셨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입대 전날,

남아 있는 친구 지인들과 송별 회식을 마치고

귀가했더니

그 아이에게서 전화가 많이 왔다고 했다.

반가웠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다음 날 입대.

시간이 없었다.


‘아, 이걸로 끝이구나’


안타깝게도 통화는 끝끝내 못해버렸다.

40여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영천역에서 어머니와

휴가 나온 공수부대 친구의 전송을 받으며

논산행 군용 열차에 몸을 실었다.


길고 길었던 나의 입영 대기 기간은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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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차엔 입대 이후 이야기과

국문과 친구와의 이별 이야기를 다룬다.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이야기라서

일목요연하지 않다.


오래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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