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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1983년(7)

by 신화창조
가을 단풍.jpg

긴 대기 끝에 드디어 영천역에서

논산 훈련소행 열차를 탔다.

아쉬운 이야기를 다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 아이와 통화 한번 못하고 떠나온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잊자, 잊어버리자. 마음에 최면을 걸자.’


훈련소 생활 6주 동안 잊으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뜨거운 뙤약볕, 폭우 속에서도,

잠자리에 들거나, 보초를 서고 있어도

온통 그 아이 생각뿐이었다.


편지를 썼다.

이별을 선언하고 온 뒤라 달리 할 말은 없었지만,

그저 난 잘 있다고, 보고 싶다고.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럭저럭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작대기 하나, 중대장 표창 하나 얻어서

후반기 병과 교육을 위해 부산으로 왔다.


체념했다.

‘맞아. 우린 이별을 한 거지.’


그렇게 후반기 교육에 적응해 나가던 어느 날,

갑자기 중대본부로 그녀의 편지가 날아왔다.

가슴이 두 방망이치고 하늘이 노래졌다.

살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에는 풍요로움을 느낀다.

누군가 그랬다.

방황의 끝은 원점이라고.

달아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굳이 이성으로 내 감정을 억제한다고 해서

또 해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말자.

지금 내 마음이 가는 곳에다 훗날을 생각해서

애써 돌아설 필요는 없는 거다.

어쨌든 그는 과거의 나도 아니고 미래의 나도 아닌

지금의 날 사랑하는 거다.

그래.

이제 내가 너에게 받은 만큼 해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가장 자신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할 때,

가장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 네가 있어서 참 좋았다.

온갖 것으로부터 사라지고 싶은 순간순간마다

너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

내게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던 거다.

사랑은 고맙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지.

그래. 고맙다는 말은 생략하자.

대신 널 위해 조그마한 내 마음을 열어놓자.

네가 날 생각할 때

조용한 미소가 잔잔히 얼굴 가득히 넘치도록

너에게 있어서 나는

귀엽고 아름답고 따뜻한 女子가 되어보자.

수없이 밀려오는 유혹에서도

널 위해 기도하는 그리움을 간직해 보자.

.................

가까운 부산에 배치되어서 다행이다.

이제 자주 편지도 하고 면회도 갈 테니까

예전보다 더 날 사랑해 줘야 한다.


그럼 오늘 밤도 좋은 꿈 꾸고.”




그녀에게서 온 첫 편지였다.


끝났다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편지를 보내오다니.

정말이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후반기 교육이 끝나는 마지막 주를 남기고 가족 면회가 있었다.

영내 면회 두 시간.

어머니와 누나가 면회를 왔다.

면회 시작한 지 한 30분쯤 지났을까.

면회객 접대를 맡고 있던 후임 병사가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선임, 밖에 누가 와있는데요.”


단걸음에 달려나갔다.

그 아이였다.

너무 놀라고 좋아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얼싸안고 기뻐했다.

말은 필요도 없었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탓에 어머니와 누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고개도 못 드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그냥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두 시간을 흘려보내 버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다니.


그렇게 부산에서의 6주도 바람같이 지나갔다.

가슴 가득 벅찬 기분을 안고 강원도로 올라갔다.


1983년 가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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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강렬함이 태풍처럼 다시 몰려와

단박에 써 내려가다 보니

국문과 친구 이야기를 미처 못 했다.

아쉽지만 여기까지 해야겠다.


다음 회에서는 국문과 친구 이야기를 잠깐하고

사연들을 이어 가야겠다.

1983년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사랑이미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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