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를 2주 정도 남긴 8월의 어느 날,
몹시 더운 날이었다.
국문과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입대 전 마지막 만남이라 여기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어쩌면 영원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녀와 무릎을 마주하고 앉았다.
“술 한잔할래?”
“그러자.”
동성로 뒷골목, 어느 주점에서
여느 때처럼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누었다.
감사하게도 그녀 덕분에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드문 일이었다.
늘 했던 뾰족한 말도 없었고,
내 말에 경청도 잘해 주었다.
잘 웃어주고, 잘 받아주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술병도 빠르게 쌓여갔다.
뚜렷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주로 내가 이야기를 하고
그녀는 들어주고 맞장구쳐주었던 것 같다.
많은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술에 취해 잠시 필름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진 듯했다.
그 사이에
꽤 긴 시간이 흘렀나보다.
나 혼자였다. 홀로 남아 있었다.
갔나보다...
탁자 위엔,
도서열람증 뒷면에 빼곡히 적힌
그녀의 메모가 놓여 있었다.
글의 첫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잘 먹고, 잘 살아라….’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진짜로.
군대 잘 다녀오라는 흔한 위로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나쁜 놈아!’이런 말도 없었던 것 같다.
실컷 잔 덕분에 술도 다 깨었다.
좀 더 근사한 이별을 기대했는데
이상하게 마무리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섭섭하지는 않았다.
늘 미안했던 터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군대를 기준으로 해서 내 인생의 전반기가 끝났다는
거창한(?)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먼 밤길을 홀로 걷고 또 걸어서.
스물셋은 뭔가 서툴고, 모자라며,
부족한 나이가 아닌가 싶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바라보고 배려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허나
우리 둘 모두
‘고작’ 스물셋이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군대 생활도 반 이상 지나간 뒤,
한결 차분해진 그녀의 편지를 한 번 받아 보았고,
제대 후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어 있는 그녀를
‘아주 편안하게’ 한 번 본 것이
그녀와의 이야기의 끝이다.
헤어질 때 아주 근사한 악수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구도 마지막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렇게 40년이나 흘렀다.
이제 이야기도 끝을 향해 달린다.
내게는 가장 빛났던 시절,
내게만 가장 소중한 시절의 이야기가 끝나간다.
이 평범하고 재미없는 글을 쓰는 데 말이다. 40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