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대기 끝에 드디어 영천역에서
논산 훈련소행 열차를 탔다.
아쉬운 이야기를 다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 아이와 통화 한번 못하고 떠나온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잊자, 잊어버리자. 마음에 최면을 걸자.’
훈련소 생활 6주 동안 잊으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뜨거운 뙤약볕, 폭우 속에서도,
잠자리에 들거나, 보초를 서고 있어도
온통 그 아이 생각뿐이었다.
편지를 썼다.
이별을 선언하고 온 뒤라 달리 할 말은 없었지만,
그저 난 잘 있다고, 보고 싶다고.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럭저럭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작대기 하나, 중대장 표창 하나 얻어서
후반기 병과 교육을 위해 부산으로 왔다.
체념했다.
‘맞아. 우린 이별을 한 거지.’
그렇게 후반기 교육에 적응해 나가던 어느 날,
갑자기 중대본부로 그녀의 편지가 날아왔다.
가슴이 두 방망이치고 하늘이 노래졌다.
살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에는 풍요로움을 느낀다.
누군가 그랬다.
방황의 끝은 원점이라고.
달아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굳이 이성으로 내 감정을 억제한다고 해서
또 해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말자.
지금 내 마음이 가는 곳에다 훗날을 생각해서
애써 돌아설 필요는 없는 거다.
어쨌든 그는 과거의 나도 아니고 미래의 나도 아닌
지금의 날 사랑하는 거다.
그래.
이제 내가 너에게 받은 만큼 해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가장 자신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할 때,
가장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 네가 있어서 참 좋았다.
온갖 것으로부터 사라지고 싶은 순간순간마다
너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
내게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던 거다.
사랑은 고맙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지.
그래. 고맙다는 말은 생략하자.
대신 널 위해 조그마한 내 마음을 열어놓자.
네가 날 생각할 때
조용한 미소가 잔잔히 얼굴 가득히 넘치도록
너에게 있어서 나는
귀엽고 아름답고 따뜻한 女子가 되어보자.
수없이 밀려오는 유혹에서도
널 위해 기도하는 그리움을 간직해 보자.
.................
가까운 부산에 배치되어서 다행이다.
이제 자주 편지도 하고 면회도 갈 테니까
예전보다 더 날 사랑해 줘야 한다.
그럼 오늘 밤도 좋은 꿈 꾸고.”
그녀에게서 온 첫 편지였다.
끝났다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편지를 보내오다니.
정말이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후반기 교육이 끝나는 마지막 주를 남기고 가족 면회가 있었다.
영내 면회 두 시간.
어머니와 누나가 면회를 왔다.
면회 시작한 지 한 30분쯤 지났을까.
면회객 접대를 맡고 있던 후임 병사가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선임, 밖에 누가 와있는데요.”
단걸음에 달려나갔다.
그 아이였다.
너무 놀라고 좋아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얼싸안고 기뻐했다.
말은 필요도 없었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탓에 어머니와 누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고개도 못 드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그냥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두 시간을 흘려보내 버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다니.
그렇게 부산에서의 6주도 바람같이 지나갔다.
가슴 가득 벅찬 기분을 안고 강원도로 올라갔다.
1983년 가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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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강렬함이 태풍처럼 다시 몰려와
단박에 써 내려가다 보니
국문과 친구 이야기를 미처 못 했다.
아쉽지만 여기까지 해야겠다.
다음 회에서는 국문과 친구 이야기를 잠깐하고
사연들을 이어 가야겠다.
1983년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