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자
국어 선생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장한 마음으로)
1979년 한참 오래된 이야기다.
내가 어디 출신인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 이런 건 알려고 들지 마라.
그 선생님께 들키고 싶지 않다. 무섭다. 아직도 난 그분의 카리스마에 눌려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기도 하지만 詩人이었다.
키가 매우 크셨고 앞이마가 훤했지만, 당시로는 보기 힘든 장발이었다. 장발 단속이 있던 시절이었는데 학교 밖으로 나가면 당장에라도 단속될 정도였다. 예술가의 반동 기질 정도로 우리는 이해했다.
국어 수업. 古文 修業은 언제나 대충대충, 詩가 나오는 대목이라도 될라치면 목소리가 커지며 곡조를 탄다.
종종 쉬는 시간이 없어지기 일쑤였다. 시를 강의하는데 조금이라도 딴짓이라도 하면 엄청나게 화를 내며 폭력을 불사하기도 했다. 짤막한 시 한 편을 가지고 몇 시간을 강의하는 건 예사였다. 시험에 많이 나오는 고문이나 3.1 독립선언문 같은 건 30분도 안 되게 강의하면서 말이다.
부당함의 대명사 같은 분이었다. 약주를 좋아해서 전날 음주라도 하고 오시는 날에는 수업 시간 내내 주전자 한 통을 다 드시기도 했다. 금붕어...
학년 초에 다른 담임들 다 가는 가정방문도 홀로 가지 않고 부모님을 일일이 학교로 호출하지 않나, 공부 못하는 애들을 대놓고 차별하지 않나, 선생님의 기이한 행동을 전부 나열하려면 끝이 없다. 지금까지 언급한 정도는 아주 ‘새 발의 피’ 다. 아무튼, 원성이 자자한 이상한 담임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우리 반 누구도 선생님을 크게 원망하는 애는 없었다는 것이다. 폭력이 난무하고, 성의 없는 수업 태도에, 부당함에…….
그런데도 왜?
그 이유는 대단히 성의 없어 보이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당신의 국어 수업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의 詩 수업에 거의 혼을 갈아 넣는다.
소리 지르고, 읊조리고, 감탄하고, 탄식하고, 어떨 땐 울기 직전까지 간다.
웃겨 죽이는 상황이지만 웃기라도 했다간 끔찍한(?)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웃음과 슬리퍼 짝 폭행을 맞바꾸어야 한다.
억지로 참으며 그 시간을 버티어내야 한다. 살려면.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서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반전이 왔다.
그의 수업이 재미있어지고 몰입 만점이 된 것이다.
대학 입학시험과 관계없이 우리 반 애들 대부분이
예술과 문학에 일정 수준의 조예를 갖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
이런 식으로 가르친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단 말이다.
“시는 쉬워야 한다. 난센스한 시는 위험하다. 시는 순수해야 한다. 참여 시는 어렵다. 어려우면 시가 아니다. 시어는 조탁(彫琢)된 언어만 써야 한다. 단어 하나로 밤을 새울 정도로 영혼을 시 속에 갈아 넣어야 한다. 나는 서정주 선생에는 못 미친다. 그러나 박목월 선생과는 맞먹는 수준이다(이 무슨?). 통속한 문학의 근처에도 가지 마라. 쌍놈 문학이다. 시를 쓰려면 순수시를 써라. 문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쓰지 마라.”
세상을 떠돌다 이제 겨우 인생의 그늘 밑에 앉아서 불현듯 생각난,
엉망진창 우리 담임.
학창 시절엔 무서워서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던 선생님.
일기장에 욕도 참 많이 썼는데...
지금은 여든도 넘으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