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장을 아십니까?
대입 예비고사 340점 만점 중,
체력장 시험이 20점이면 꽤 높은 비중이었다.
한 종목도 빠뜨리지 않고 참가하기만 하면
10점 정도는 받을 수 있었으니,
나머지 10점이 문제였다.
그 10점을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뙤약볕 아래 넓은 운동장을 누벼야 했다.
단 한 점이 당락을 좌우한다는 절박감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1000미터 달리기 3분 49초,
100미터 달리기 15초,
멀리 뛰기 3미터,
윗몸일으키기 30초에 30개,
허리 굽혀 펴기 15센티,
턱걸이 20개,
왕복 달리기(이건 정확한 기준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일곱 종목을 측정 받고
기준 기록을 통과하면 20점 만점을 준다.
10월 쯤, 예비고사 일정에 앞서 시험을 보는데
그 준비 과정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수험생인 우리의 절박함도 대단했지만
체육 선생님들의 자존심 경쟁도 어마어마했다.
결과가 즉시 나오니 선생님 별로 비교가 되고,
비교가 되니 체육 선생님의 지도력도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얼마나 다그치셨겠는가.
그랬다.
운동선수 뺨치는 훈련을 1년 내내 받아야 했다.
아침에 한 시간 일찍 등교해 운동하고,
점심 때 또 하고,
기록 안 나오는 애들은 방과 후에 또 하고.
그렇다고 해서
운동 잘하는 아이들이 편했던 것도 아니었다.
기준에 못 미치는 친구들을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 1000미터를 2분 50초에 주파하는
괴물이 하나 있었다.
그 녀석 허리에 줄넘기 줄을 묶어,
기록 미달인 친구의 허리와 연결해 달리게 했는데,
그 효과가 대단했다.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애들이 기준 기록을 통과했으니까.
나역시 학년 초엔 억지로 5분에 뛰는 수준이었지만
나중엔 일취월장, 3분 30초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괴물은 남들 도와주느라 열배는 많이 뛰어야 했다.
대학 시험에서 체력장이 제외되고 6년 뒤,
교생 실습으로 모교를 한 달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본 아이들의 체력 수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주일에 한 시간 하는 운동장 조회 시간에 쓰러지는
아이들이 수두룩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분명 덩치는 커졌는데 말이다.
체력장 시험이 폐지된 후유증이었다.
아마 요즘 애들도,
당시 우리의 기준 기록을 쉽게 통과하진 못할 것이다.
턱걸이 20개를 쉽게 하는 애들을 본 적 있는가.
그때 우리 반 70명 중,
턱걸이 20개 못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연히 운동장에서 픽픽 쓰러지는 아이도 없었다.
왜 체력장을 폐지했을까?
모르겠다.
난 단지,
아이들이 지금보다 튼튼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체력이 국력이라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