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운 보초(步哨)

by 신화창조
산하.jpg

주간 2시간, 야간 2시간.

하루도 빠짐없이 무조건 보초를 섰다.

둘이서 서는 복초(複哨)라면 대화 상대라도 있으니

시간 보내기가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병력이 부족한 부대 사정상

우리는 單哨(단초)를 서야 했다.


춥고 더운 건 물론이고 야간에는 졸음과 싸워야 했지만,

매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적응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시간 보내기였다.

인적 없는 산속 외딴 곳에서 총을 메고

두 시간을 홀로 보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병사 각자가 나름대로

스스로 고안한 방식으로 두 시간을 때운다.


인적 없는 곳에서 홀로 만든 방식이다 보니까

남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배꼽을 잡고 웃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기발하고 황당한 방식으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난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주간 보초 때는 골프를 하면 시간이 잘 간다.

작대기 하나와 돌멩이 하나 주워 와서,

흙바닥에 구멍 하나 파놓고,

총을 엑스자로 메고,

내 멋대로 룰을 만들어 골프를 했다.

홀인원, 이글에 열광하고 보기에 좌절했다.

홀로 만세도 부르고 탄식도 하다 보면 두 시간이 후딱 갔다.


어디 골프만 했을까.


2년 동안 보초를 서며 윤동주 시를 다 외우기도 했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한 번은 보초를 서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혼자 웅얼거린다는 것이 볼륨 조절에 실패해

일직 사령이 뛰어 올라온 적도 있었다.


홀로 서는 초소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름답다.

진달래, 개나리, 아카시아, 밤꽃, 가을 국화까지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는 순서를 다 외우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은하수 물결들,

커지고 작아지는 달빛들의 향연들.

스스스스스.

소리 내며 떨어지는 깊은 밤 낙엽 소리.

군대 아니면 어디에서 듣겠는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축복받은 청춘이랄 수도 있다.


그리운 보초,

그때는 몰랐던 빛나는 젊은 시절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꽃 같은 청춘.

봄날은 간다1.jpg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22화우리가 사랑한 빼치카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