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카리 Oct 22. 2023

신점 본 이야기

복채 10만 원

얼마 전 신점을 보러 갔다.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일이 있어서 이 일이 도대체 나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지인이 신점을 가서 자기의 과거를 다 맞추었다고 하고 미래 선택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길래 나 역시 좀 물어보고 싶었다.


기다리면서 계속하느냐 새로운 길로 가는 것인가가 문제였다. 사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 회사에서 매일매일이 힘들고 답답했어서 무작정 신점을 보는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집에선 그냥저냥 좋은 얘기만 해주면서 앞으로 다 잘될 거라 해주었기 때문에 조금 신뢰가 생겼다. 그리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겨서 용하다는 집을 수소문해 보았다.


이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담이며 내가 만난 무당은 무당의 일부일 뿐이며 그 사람의 개인적인 행동이 다른 무속인들의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 싶다.


이 무당이 용하다고 소개해준 지인은 나와 같은 전 회사를 다니며 같은 상사 밑에서 고생을 한 사람이었다. 둘이서 상사 뒷담을 깐 것이 책으로 한 권은 될 것이다. 회사를 나온 뒤로도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는데 어느 날 자기가 너무 신기한 경험을 했다며 이 무당을 소개해줬다. 자신의 과거 사고, 아픈 곳, 비밀스러운 것까지 모두 다 맞추었다는 것이다.


그 집의 주소를 물어 예약을 잡고 갔다.


평범한 빌라의 2층에 OO암이라고 간판을 걸고 있었다. 신기하게 교회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들어가니 40대 후반? 50대 초의 인상이 세 보이는 무속인이 나와 나를 반겼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신당이 차려져 있었다. 지인이 무당은 동자신을 받았다고 했다. 지인은 점을 본 뒤로도 무당을 통해 동자신이랑 얘기를 한다고 했다. 나는 얼마 전에 태자귀에 대한 글을 쓴 적도 있기 때문에 사실 동자신에 대해 실제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다.


https://brunch.co.kr/@intothebluesea/99


자리에 앉자마자 무당이 한숨을 쉬었다.

"꽉 막혔네 아주 회사에서 난리도 아냐"


"네... 전 회사가 좀 힘들었고요 지금은 살만해요"


https://brunch.co.kr/@intothebluesea/88

(힘들었던 전직장 탈출기)


"아니야 지금 회사도 아주 말도 아니야... 자기는 회사 다닐 사람이 아닌데 고생이 많다."


"네... 지금 회사도 좀 어렵긴 하죠"


사실 지금 회사에는 큰 불만 없이 잘 다니고 있다. 뭐 인정받으면서 성장하는 인재는 아니지만 내 역할을 하면서 상사와도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말을 들으니 문득 '음... 역시 이 회사에서 쭉쭉 뻗어나가지 못하는 게 잘 못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회사원을 할 팔자가 아니야 무당이나, 스님이 될 팔자인데 여기저기 기도를 많이 해야 돼.. 그런데 그렇게 빌 줄을 모르니.."


"아.. 네"


"몸이 많이 아프네 뇌 쪽으로"


"네.. 작년에 몸이 여기저기 아프긴 했어요.."


"아버지 살아계셔? 아버지 쪽으로도 안 좋은데?"


"살아계셔요..."


"음.. 쌀 점을 한번 보자"

"회사 생활을 할 사람이 아냐 욱하는 성격이 있고 윗사람을 따르지 않아"


사실 이때부터 조금씩 신뢰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 성격은 자타공인 유들유들하기 짝이 없는 성격인데 내가 욱해서 들이받는다니...


"올해 망신살이 있어... 여자 문제로 회사에서 크게 망신을 받을 거야"


"네? 아...."


"주변에 여자들 있지? 사주를 말해봐..."


"내년이면 뇌졸중이 올 것 같은데..."


"어머니가 내년에 돌아가실 것 같아.. 내가 사실 이런 얘기 잘 안 하는데... 점괘가 이렇게 나오니"


"뭐? 시험? 너는 공부를 할 사람도 아니고 너 스스로도 자신이 없다는데?"


사실... 나는 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나 스스로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선택의 기회비용을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여자 친구가 숨기고 있는 게 있어 다른 남자 있어"


"여자 말고 다른 여자가 나온다. 그 여자 때문에 망신살이 내년에 있어"


그리고는 엽전을 뿌리고 점괘를 보았다.

이때쯤 되자 슬슬 아... 이 사람이 나에게 협박을 해서 굿을 하려고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사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 사람이랑 싸워서 내가 무슨 득이 있나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마 승부수는 어머니 돌아가신다는 얘기와 여자친구가 바람피우고 있다는 것이었을 텐데 내가 그것에 뜨끈 미지근하자 막힌 운을 뚫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위에 들은 말 하나하나 모두 너무 심한 모욕이었기 때문에 이쯤에서 신당을 한번 엎어야 하는 게 사람된 도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항상 말한다.


"똥은 싸우는 대상이 아니다. 똥과 싸우면 이겨도 내 몸에 똥이 묻는다. 길 가다 똥을 보면 돌아서 가야지 치우는 일도 내일이 아니고 싸우는 일은 더더욱 내일이 아니다."


공자님도 말씀하셨다. 아무 데나 숨어서 똥을 누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니 꾸짖어 가르치지만 길가운데서 똥을 누는 사람은 미친놈이니 가르쳐도 알아들을 리가 없기 때문에 피해 가라고 하셨다.


어찌어찌 내 가족과 직장 미래 친구들에 대한 심한 모독과 위협을 견디고 나와 운전석에 앉으니 시간 낭비 정신 낭비가 너무 화가 났다. 태자귀 취재비라고 생각하기에도 중간에 할머니 신이 바라본다고 얘기를 하는 바람에 김이 팍샜다. 지인을 만날 때는 왜 동자신이고 나는 할머니신인가...


예전에 아는 지인이 자녀 이름을 지으러 갔을 때 대통령이 될 삼천만 원짜리 이름을 짓지 않자 애가 장애인으로 태어날 것이라며 천만 원으로 정상인을 만드는 이름을 지으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지인은 대판 싸우고 부자가 될 이름을 오백만 원에 짓고 끝냈다고 했다. 나는 그런 싸울 성격도 아니고 아기나 가족을 빌미로 돈을 협박을 하는데에 넘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씁쓸한 뒷맛을 뒤로하며 나의 첫 번째 본격 신점 풀이는 대 실패로 끝났다. ㅋㅋㅋ 첫 번째인 이유는 다른데 또 가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맹목적으로 점괘만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또 나약하여 어딘가에 의존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후 그럼 일단 무당이 말한 우리 집안이 몰살당하는 내년은 좀 조용히 견뎌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이 일화는 일부 무속인의 개인적인 행동이며 무속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그저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내연애는 죄가 아니잖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