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좀머 씨 이야기>와 영화 <향수>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이다. <비둘기>는 은행 경비원 53세 조나단 노엘이 비둘기 한 마리와 마주치면서 일어나는 단 하루의 총체적 난국 이야기다. 조나단은 세상사에 불신과 무감각에 빠져 지내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 본인 소유의 옹색한 방이라도 갖게 된다고 안도하는 소심하지만 근면한 인물이다. 어느 날 그는 복도 문 앞에 나타난 비둘기 한 마리에 공포를 느끼고 그대로 달아난다. 현실에서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우리 작은 딸 만해도 비둘기만 보면 소리소리 지르며 거의 경기를 일으킬 정도가 되는데 나야말로 그녀의 고함에 경기가 날 지경이다. 비둘기로 인한 기시감이 있어 이해가 됐다. 그러나, 공포스러운 비둘기 한 마리에 놀란 그의 하루는 균형이 깨지고 정확하던 일상이 무너진다. 직장에서도 본분을 잊은 채 점심시간이 되자 시름에 빠져 거리를 헤매는 등. 작은 호텔 가장 싼 방을 얻어 프런트에 짐을 맡긴 채 공원으로 나와 풍경 속 사람을 관찰하며 자신의 인생 전반에 대해 생각한다. 결코 헛된 것을 바라지 않고 누구에게도 신세 진 적 없이 방 한 칸의 희망만 바라며 일했는데 나이 오십 넘어 이런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나? 그의 인생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듯한 괴로움에 정신을 잃을 정도다. 공원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일련의 사건을 겪고 더욱 방황하다 간신히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마지막 남은 10분의 근무 시간을 채우고 은행 문을 나선다. 자신의 방 보다 작고 초라한 호텔로 돌아와 "내일은 자살해야지" 하고는 잠에 빠져든다. 낯선 방에서 악몽 같은 밤을 지내고 자신의 아파트로 가는데 비둘기가 깃털 하나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안도한다. 갑자기 공포가 사라져 버리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조나단 노엘에게 비둘기는 고통과 불안이 아니었을까? 쉬운 부조리극 혹은 재미있는 어른 동화처럼 읽혔다. 한낱 비둘기에 놀라 달아나지만 세상밖에서 고초를 겪고 다시 돌아 온 집엔 다시 평화가 깃들었다. 라고 파랑새를 떠올려야 하는 건지도.
[보행은 마음을 달래 줬다. 걷는 것에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걷는 것은 규칙적으로 발을 하나씩 떼어 놓고 그와 동시에 리듬에 맞춰 팔을 휘젓고 숨이 약간 가빠 오고 맥박도 조금 긴장하고 방향을 결정할 때와 중심을 잡는 데 눈과 귀를 사용하고 살갗에 스치는 바람의 감각을 느끼고 --그런 모든 것이 설령 영혼이 형편없이 위축되고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크고 넓게 만들어 주어서-- 마침내 정신과 육체가 모순 없이 서로 조화로워지는 일련의 현상이었다.] 걷기에 대한 어떤 인문학 서적 보다도 마음에 확 닿았던 문장이다. 내 이러니 소설에서 철학, 인문학, 자기 계발에 이르는 재미와 발견 아니 사랑할 수 있겠는가.
현대인의 고독과 은둔 불안에 대처하는 자세 혹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한 쟁취와 노력을 은유적으로 보여준 작품으로 해석했다. 그 와중에 어이없음과 유머, 공감과 연민을 두루 갖춘 과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