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하드'다. 단단하고 차가우면서 달콤한 얼음덩어리 '하드'. 하드 중에서도 특히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서 '바밤바'를 좋아했고 언니를 따라서 '누가바'를 좋아했다. '바밤바' 속의 감춰진 꿀과 밤 조각을 찾아내어 먹는 재미를 좋아했다. '누가바'의 캐러멜 맛이 나는 겉껍질을 오도독 오도독 깨물며 하얀 속살을 혀로 살살 녹여 먹는 것도 좋아했다.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한 하드는 '아맛나'였다. 이유는 얼음 속 깊숙이 숨어 있는 단팥 때문이었다. 나는 팥이 든 음식을 좋아했다. 아버지를 닮아서 그랬다. 아버지는 단팥빵, 팥 도넛, 팥죽, 팥빙수, 호두과자 그리고 아맛나를 좋아했다. 모두 달콤한 팥이 들어 있어서였다. 나도 팥이 든 건 다 좋아했는데 아버지와의 차이점이 딱 하나 있었다. 아버지는 하드 중 하나인 '비비빅'도 좋아했지만 난 아니었다. 난 팥으로 된 하드는 '아맛나'만 좋아했다.
'아맛나'의 속 재료와 같은 팥을 원료로 만든 '비비빅'은 내가 좋아하는 '하드'가 아니었다. 어렸지만 분명한 취향을 가졌던 나는 재료 본연의 형태와 맛이 살아 있는 '하드'를 좋아했는데 '아맛나'가 그랬다. 팥의 동글동글한 모양이 살아 있어서 혀에 톡톡 걸리는 그 느낌이 좋았다.반면 '비비빅'은 팥을 갈아 전체적으로 얼려 놓았기 때문에 정확한 실체를 알기가 어려웠다. 색깔만 거무튀튀하다고 다 '팥'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의심했었다.
어릴 적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놀다가 구멍가게에 들러 하드가 잔뜩 들어 있는 기다랗고 네모난 사각형 통의 동그란 뚜껑을 열고 '아맛나'를 꺼내 먹을 때의 그 꿀맛을 잊지 못한다. 또 아버지가 종종 퇴근길에 사 오던 '아맛나' 역시 지금도 잊지 못할 그리운 팥맛이다. 나에게 있어 '아맛나'는 보고 싶은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하드'이다.
그 '아맛나'가 40여 년 세월 동안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출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 놀랍다. 제품이 출시된다는 것은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깜빡이다 꺼져버리는 전구처럼 스스로 명멸해 간 이 땅의 수많은 제품들, 현상들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잠깐 유행하다가 사라진 것들은 얼마나 될까...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지켜냈다는 의미이다. 잘 팔리지 않고, 사람들이 덜 찾는다고 해서 '아맛나'가 속 내용물을 '팥'에서 '콩'으로 갈아치웠다면 어땠을까? 또는 '조' '수수' '기장' 등등 온갖 잡곡들을 돌아가면서 실험적으로 다 넣어 보았다면 어땠을까? '아맛나'는 진작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아맛나' 속의 팥처럼 나만의 정체성을 내 안에 단단하고 야무지게 만들어 나가고 싶다. 그렇게 앞으로 40년이 넘도록 '아맛나' 같은 '나'로 살고 싶다. '아맛나' 겉 포장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맛나' 나이 50세. 1972년에 출시된 중년의 하드 되시겠다. 나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친구로구나. 어깨동무를 해도 딱 좋을 우리들이었구나.
마트 세일 기간. 천 원에 3개, 헐값에 팔려나가는 '아맛나'를 3000원어치 사 왔다. 마음 같아서는 냉동고 바닥까지 긁어서 전부 데려오고 싶었지만 나이 들며 간식을 자제하려는 내 의지가 앞섰다. 요새 가끔씩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간헐적 단식을 실천하는 나 스스로가 갑자기 미워지려고 했다.
'아맛나' 9개를 사흘 만에 올킬하고 나서 든 생각이 있다.
'아맛나가 개당 3천 원쯤으로 올랐으면 좋겠다!!!'
비싸져야 내가 간식도 덜먹겠지만 50세 중년의 '하드'에게 300원 남짓 값을 매기는 건 너무 박한 처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몇 살 먹지도 않은 신제품 과자들도 2000원이 넘는 요즘 같은 시대에반백 년을 살아낸 '아맛나'가 300원 꼴이라니. 이건 말이 안 된다. 아버지와 내가 함께 사랑했던 '아맛나'! 난 네가 제값을 좀 톡톡히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