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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연 Mar 20. 2020

돈키호테를 찾아서 25

세 번째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여, 게르니카여.


지난 편에서 낯선 총각을 따라 어두운 뒷골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10시 이후에도 맥주를 파는 가게를 그에게 소개받아 맥주를 구할 수 있었다. 마치 무언가 일이 더 벌어질 것 같이 쓴 것은 독자에게 조금이라도 흥미를 더 주려 했던 작가의 무리수였음을 밝힌다. 맥주는 쉽게 구했다. 밤길은 안 무서웠지만 까르푸에서 1.4유로인 마오우 한 병이 여기서는 2.1유로라는 게 무서웠다. 1리터짜리 두 병은 먹어야 향수병을 딛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밤이었기에 나는 두 병에 4.2유로를 지불했다. 한국 돈으로 하면 6천 원이 넘었다. 까르푸에서 샀으면 2.8유로 즉 4천 원이 안 되었을 텐데, 역시 가난한 작가는 이국에서 맥주를 먹을 때도 환율을 계산하는 궁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마침내 구매한 마오우와 감자튀김. 무이 비엔~



아무튼 평소보다 2천 원 정도를 더 주고 구매한 마오우 1리터 두 병은 매우 흡족했다. 오늘 밤은 맥스보다 더 맛있는 듯해 흡사 독일 쾰른 지방의 맥주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작업실이자 거처에서 마드리드 맥주를 마시며 마드리드의 밤이 깊어갔다. 내일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오후에 한 가지 일정을 소화하면 된다. 그것은 마드리드 3대 미술관 아트 패스(파세오 델 아르테) 중 마지막 남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방문이다. 소설가에게 미술관이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준다는 이론적 근거는 없지만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과 프라도 미술관은 내게 큰 영감을 제공해 준 바 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영감의 약물 한 병'같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가 예술적 기운을 충전하고자 한다. 그래서 남은 체류 기간 중에도 지치지 않고 돈키호테를 쫓을 수 있게.


다음날 오전, 맥주 두 병에도 은근한 숙취를 느끼며 깨어났다.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소주나 와인을 섞어 먹지도 않았고 도수가 높은 IPA맥주도 아니었고 여럿이서 왁자하게 먹어 분위기에 취한 것도 아닌데 홀로 독작 후 수도사처럼 잠들었음에도 숙취는 서울의 아침과 확연히 달랐다. 애주가로서 확실히 느끼는 바, 역시 혼술은 몸에 안 좋습니다. 그것도 타지에서 타지 물로 만든 술은 더욱더. 다행히 이곳에서 미술관은 오후에 가는 것이 좋다는 걸 그동안 경험을 통해 깨달은 상태였다. 관람객들은 오전에 부지런히 미술관을 드나들고 오후 1~2시쯤 점심을 먹을 겸 퇴장을 하곤 했다. 그래서 1~2시 정도에 입장하면 확실히 덜 붐빈다. 미술관의 인구밀도는 감상에 크나큰 영향을 주는 요소이기에 언제나 입장 타이밍이 중요하다. 나는 레지던스 식당에서 조식을 먹고 휴식을 좀 취한 뒤 정오가 지날 즈음 길을 나섰다.


아토차 역에서 서쪽으로 혹은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나오는 거리에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이 있다. 스페인의 근현대 미술 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피카소의 역작 <게르니카>가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내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마드리드 3대 미술관 중 제일 마지막에 관람하기로 한 이유도 사실 <게르니카>에 있다. 살면서 피카소의 그림만은 많이 감상한 편이다. 그가 남긴 작품이 많기도 하거니와 어릴 적부터 그의 독특한 그림체와 화풍에 흥미를 많이 가졌다. 어린 내게도 그의 그림은 남의 그림과 확실히 달랐고 예술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라는 첫 이해를 내게 준 작품들이 바로 피카소의 것들이었다. 그런 피카소의 추상적인 입체파 그림이 사실은 엄청난 기본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 것도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그의 청년 시절 수많은 습작은 인간과 동물의 신체 균형을 정확히 묘사한 그림들이었고 그런 창작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뒤에야 자기만의 재해석과 예술적 색채가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고로 피카소의 역작 <게르니카>를 본다는 것은 내겐 어떤 예식이자 영접의 순간이었다. 오늘의 미술관 관람 동선 역시 마지막에 관람할 <게르니카>를 향해 세팅되었다. 미안하지만 다른 작품들은 크게 안중에 없었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까진.


오직 게르니카를 향한 진군이 무의미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나의 예상보다 더 현대 작품 중심이어서 과거 다른 미술관들에서 본 중세 시대 성화들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사실 미술관에 가면 중세 시대 성화들은 인상적인 작품을 제외하고는 스쳐 지나가곤 하던 내게 이곳은 숨 쉴 틈 없이 계속되는 현대 작품들 덕에 스쳐 지나갈 방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내 관람 태도를 비웃듯 신선하고 도발적이며 뚫어지게 살필 수밖에 없게 만드는 흥미로운 현대 작품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나는 진도를 빼듯 감상하던 대형 미술관 관람 태도를 교정하고 천천히 하나하나 그림을 음미하고 다시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시대 작품이 우위에 있다는 게 아니다. 현대 작품에 대한 내 관심이 원체 더 컸고 이곳은 내 예상보다 더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전시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살바도르 달리가 창가에 선 채 바다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뒷모습을 그린 <창가의 여인>은 너무도 아름다워 한동안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일본 단체관광객이 출현하고 나서야 자리를 비켜주었다. 달리를 녹아내리는 시계를 그리는 화가라고만 알던 나를 정신 차리게 해 준 걸작이었다. 귀가 후 검색을 통해 이 작품이 얼마나 유명한지 확인했고 달리와 여동생과의 애증 역시 그림에 대한 감상을 복기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이 그림이 한국의 베스트셀러 심리서의 표지로도 쓰였음을 발견하였는데, 그 책은 몇 년 전 내가 이미 읽은 책이었다. 역시 나 같은 ‘미알못’은 액자에 그림이 담겨 벽에 걸려 있어야 그나마 그림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Salvador Dali. Figure at a window.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소장.



내 발을 굳게 한 또 다른 작품은 <Return from Fishing>이란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의 작품이었다. 호아킨 소로야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스페인 화가였는데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화가여서 더욱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작은 고깃배가 해변에 정박해 있고 어린 딸이 고기잡이라는 생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마중 나와 물고기가 든 바구니를 들고 앞장서 육지로 향하는 그림이었다. 그림의 뒤로는 매우 현실감 있는 파도로 장식된 바다가 넘실대고 있는데 그 바다는 마치 누군가의 험난한 직장이자 아름다운 풍경이고 사나운 세상의 한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는 듯했다. 색감과 현실감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나는 단번에 이 그림에 빠져들고 말았다.


Joaquin Sorolla. Return from the Fishing.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소장.



집으로 돌아와 호아킨 소로야를 검색해보니 어랏, 이 화가의 생전 자택을 개조한 미술관이 내가 사는 레지던스에서 불과 10분 거리가 아닌가! 늘 까바와 맥주를 사러 가던 까르푸 익스프레스에서 시내 방향으로 5분만 내려가면 되는 거리였다. 그냥 동네 산책하듯 가서 방문하면 되는 거였다. 3대 미술관만 섭렵하면 될 줄 알았던 나의 안일한 마음에 충격을 준 그의 그림을 더 살피러, 조만간 소로야 미술관을 방문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관람의 막바지에는 단편영화를 틀어주는 공간을 발견했다. 투박한 흑백 화면 속에서 스페인 남자 몇이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지나고... 점차 기괴해지고... 어느 순간 그 작품이 영화 개론서에서만 목격한 루이스 브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맙소사. 영화를 보고 나서 옆에 브뉴엘의 초상을 보니 화풍이 눈에 익었다. 살바도르 달리가 그려준 것이었다. 둘은 지금 내가 묵고 있는 레지던스에서 함께 지낸 친구였고 이 그림이 그들의 우정을 인증하고 있었다(루이스 브뉴엘을 미남으로 그려준 것을 보면 확실히 우정이 돈독해 보였다). 게다가 옆을 다시 살피니 그곳엔 <Ode a Salvador Dali>라는 제목의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저자의 이름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오 마이 갓. 로르카 역시 레지던스에서 이들과 교분을 나눈 것이다. Residencia de Estudiantes의 스페인 대표 예술가 삼총사가 서로를 위해 예술작품을 바친 흔적이 바로 이곳 소피아 미술관에 남아있었고, 그들이 함께 청춘을 보내며 묵은 곳에 지금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절로 자부심이 샘솟아 나왔다.


루이스 브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 주인공이 마치 수염을 깎은 달리 같아 보인다.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루이스 브뉴엘의 초상>. '우정 보정'이 가미되어 보인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바친 송가집. 애틋하다!



소피아 미술관에서는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초 화가들의 작품에 큰 인상을 받았고 현대 미술가들의 도전적이고 발칙한 미술 작품들에도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전시작품의 큐레이션 역시 흥미로워서 그림만이 아닌 설치미술과 동영상 상영 등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구성이 많았다. 티센 보르네미사는 미술을 사랑한 한 개인이 미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리했는지를 보여주었고, 프라도는 명실상부한 각 시대의 대표작들을 망라했다면, 레이나 소피아는 근현대의 이름 있는 작가들과 참신한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신선한 큐레이션이 돋보였다. 미알못으로서 지난 3개월간 한 30년 동안 본 그림과 맞먹을 분량의 그림을 보았고 내 안목이 좀 올라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내가 미술관에 가는 걸 즐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드리드에 다시 온다면 이 3대 미술관을 꼭 다시 방문할 것이다. 그때는 또 달라진 나만의 안목으로 이곳의 그림들을 마주하기를 희망하며.


그리고 게르니카. 그냥 가서들 보시라. 피라미드가 그렇듯 기대가 크면 작아 보이고 기대가 없으면 커 보이는 현상이 여기서도 벌어진다. 분명한 것은 게르니카의 존재감은 피라미드 급이라는 것이다. 내겐 그랬고 그것을 목격하고 느끼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분명 훈훈했다. 하지만 상체 특히 공복으로 점철된 위장은 허허롭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어느새 쌀쌀해진 바람 찬 마드리드의 늦가을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곳에 온 뒤로 애써 외면하던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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