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추억에 관한 메모들
최근 이사를 급하게 결정하고 나니 온 집안의 짐이 포화상태인 게 비로소 확 체감이 됐다.
아이를 품고 둘이 들어온 한국에서의 첫 신혼 집은(우린 미국에서 1년 정도 신혼생활을 보내고 왔다)
그 사이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고, 올해 태어난 둘째까지 합세하여 짐이란 짐은 다 담고 있는 포화상태인 상태였다.
당장 시급한 정리가 보이는 곳은 잘 사용하지 않는 창고용 작은방이었다. 혹시 몰라 남겨놓은 첫째의 육아용품과 지인들로부터 하나둘 받은 물건들까지 서로 뒤엉킨 채 쓰고 있던 작은방을 대체 어떻게 정리할까 하다 ‘비움’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약간의 검색 끝에 내가 살고 있는 시에서는 쓸만한 아이용품은 무료로 재활용 수거도 가능하다는 걸 알아냈다.
요즘 육아하는 분들은 필수로 한다는 당근마켓을 통한 중고거래 방법도 있었지만 어쩐지 자신이 없어서(필요할 때 구매는 하지만 내 물건을 판매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렵던 지..) 빨리 공간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6년 전 첫째 아이 육아 때 쓰이던 바운서를 재활용으로 내놓기로 했다.
그렇게 내놓기로 한 바운서에 재활용 물품번호를 쓰기 위해 종이를 붙이는데 순간, 여러 감정이 들었다.
이 바운서에서 첫 아이와 보내던 여러 순간들. 나도 처음 아이도 처음이었던 그 시절 그 순간들. 아이는 이 바운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짝짜꿍을 하기도 했다.
어쩐지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추억을 보내는 느낌마저 들었다
첫째 아이와 꽤나 이 바운서에서 많은 날들을 보냈던 게 문득 생각나 버린 것이다.
아쉽게도 둘째 아이는 이 바운서를 꽤 거부해서 다른 새로운 바운서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방치해 두었다가 이제는 집정리를 위해 재활용장으로 가야 하는 나의 한때 육아동지였던 물건. 하지만 이젠 고이 보내주어야 할 때인 것 같았다.
‘많이 고맙고,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
깨끗하게 세척되어 새 모습으로 변신할 나와 아이의 첫 바운서. 좋은 아가를 만나서 즐거운 추억을 또 만들어주길. 작게 기도했다.
빗속을 뚫고 아이 아기띠를 중고구입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날은 비가 무척 많이 왔다.
아이를 낳고 두 달 즈음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날씨도 좋지 않고 여름소나기라 꽤 빗줄기가 굵었다.
하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갓난쟁이를 잠깐 맡기고 나온 외출이기에 소중했다. 몇 시간에 한 번씩 수유와 기저귀갈이 재우기를 반복하던 요즘날의 잠깐의 외출은 작은 해방구 같았다.
‘문고리 거래를 희망합니다’
당근마켓을 하며 새로운 용어들을 알게 되었다.
거래온도 라던지, 문 앞에 내놓은 상품을 거래하는
‘문고리 거래’는 대부분 나와 같은 어린아이가 있는 분들이 선호하는 거래이다. 비대면이라 연락을 주고받다가 도착할 때쯤 물건을 내놓으면 확인 후 돈을 입금하는 거래방식이다.
꽤 큰 대단지아파트에 도착했다. 넉넉하게 약속시간에 맞춰왔지만 처음 가보는 낯선 곳이라 장대비가 쏟아지자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도어플을 켜고 몇 번 같은 곳을 배회하다. 결국 지나가는 주민으로 보이는 분의 도움을 받아 헤매던 끝에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처음 집을 나설 때 해방감은 사라지고 비바람에 옷이 젖어버린 눅눅한 기분이 들었다.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다행히 거래는 무사히 이루어졌다. 물건 상태도 좋았고 포장도 든든히 해주셔서 비가 왔음에도 무려 아기띠 3개를 좋은 가격에 가져올 수 있었다.
이게 뭐라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적진에서 승리한 장수처럼 의기양양한 마음을 안고 버스에 탔다.
여름이었지만 비가 온 뒤라 에어컨바람이 차가웠고 버스는 서늘했다.
그러나 마음만은 따뜻했다.
어느새 집에 잠시 맡기고 온 아가얼굴이 아른거렸다. 어서 집에 가서 아이를 새로운 아기띠에 안아 토닥여줄 생각에 기분이 몽글해졌다. 축축한 우산과 짐이 조금 버거웠지만 뿌듯한 귀갓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