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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Jul 08. 2024

텃밭 방학식

성적표 있음

*텃밭 통신문 : 텃밭에서 애쓰고 있는 작물들에게 알립니다.*

연일 계속되는 비로 인해  텃밭이 잠시 방학에 들어가니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기간은 이쁜이가 업무개시명령 내릴 때까지로 합니다. 긴급사항 있을 경우 비상연락망 이용하겠으니 숙지하여 빠른 전달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 채소들은 협조를 바랍니다.

추가 궁금하신 사항은...

좀 참고 기다리십시오. 이쁜이도 좀 쉬어보렵니다.



*상반기 현황보고*

4월 : 텃밭분양. 땅에 퇴비를 충분히 주며 준비하고 심기에 집중함. 쌈채소 모종 심기, 파종(당근, 루꼴라, 시금치), 씨감자 심기, 고구마모종 심기. 호박. 오이, 토마토, 고추. 대파, 가지심기.

5월 : 본격적으로 쌈채소를 시작으로 약간씩 수확을 시작함. 열매채소들 상태를 살피며 가지치기, 지지대 설치등 열매가 잘 맺을 수 있도록 관리에 집중하는 달.

6월 : 하지 즈음에 감자를 수확함. 추가로 고구마 모종도 심어주고 다양한 열매를  본격적으로 수확하는 달. (참고자료 : 연재 1편부터 시간순으로 정리되어 있음.)


*하반기 계획*

고구마수확, 알타리나 총각무, 배추등 가을채소를 심을 계획.(하반기 회의를 통해 결정)

본격적인 하반기 작업 시작 전 회식 예정되어 있음.


*농부들 출결사항*

햇빛이 강한 날 : 물을 주기 위해 출석함.

비 오는 날 : 밭의 상태 점검하러 출석함.

기분 좋은 날 : 좋아서 출석함.

울적한 날 : 기분 풀러 출석함.

작물 심는 날:  모두가 일정을 조율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함.

작물들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개별적으로도 수시 출석하였음. 출결상태 훌륭함.


*작물 성적*

쌈채소 : A+(끊임없이 예쁘게 내어주는 우리 밭 화수분. 믿고 보는 상추들. 덕분에 이웃에게 인심도 썼음.)

당  근 : A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으나 솎아주는 실력 부족으로 크기가 일정치 않음. 향으로 가산점 획득.)

감  자 : A (희망 없던 씨감자에서 희망을 보여준 것을 높이평가함.)

호  박 : B+(둥근 호박은 A+였으나 일부 호박은 크게 자라지 못하고 떨어져 버림. 고통분담 차원으로 호박전체 성적을 하향조정함.)

고  추 : B+(대체로 양호하나, 크기가 작은 편임.)

가  지 : B+(크기와 색은 훌륭하나 개체수가 적음.)

토마토 : B(자라나는 과정에서는 A+를 예상하였으나 뒷힘부족으로 버티지 못하고 떨어짐. 벌레공격을 많이 받아서 억울한 면이 있음.)

아직 수확 전이어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고구마는 다음학기에 성적산출예정임.


성적을 너무 박하게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애썼다는 것은 칭찬함. 성적이 약간 부족하더라도 맘 상하지 않기를 바람. 다음 학기를 위한 참고자료로만 활용할 것.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쌈채소와 열매채소를 성장 속도에 맞게 관리 및 수확했으며 물 주기도 게을리하지 않았음. 적절한 시기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밭을 일구었음. 주변 농부들과의 유대관계도 탁월했으며 주변의 칭찬을 많이 받는 예쁜 텃밭임.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찾는데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함. 향후 더 좋은 농부가 될 자질이 충분함.





비가 온다. 일기예보에 일주일이 통으로  빗살무늬토기를 연상케 하는 빗금이 그어져 있다.  중간중간 중계하듯 바뀌긴 하지만 장마철임은 분명하다. 사람에게도 작물에게도 계속된 비는 별로다. 별로라고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니 때를 기다려보기로 하자. 일기예보가 햇빛그림을 보여줄 때까지 잠시 하계방학에 들어간다. 학교들도 이제 기말고사를 마치고 슬슬 방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도 많은 것들을 수확했으니 이제 좀 쉬어야 할 때다. 시기적으로 감자수확 후 간간히 뜯어 줘야 하는 쌈채소 이외에 큰 일은 줄어들었다. 지금 우리 밭은 농한기를 맞이했다. 찾아보면 할 일 투성이겠지만 자체 농한기다.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이 노래 아는 사람 리듬 실어서 다시 한번 불러보자.


찾아갈 때마다 보물찾기 하는 맘으로 들여다본 밭은 단 한 번도 '꽝'은 없었다. 호박, 가지, 오이, 고추도 종류별로 심어놨으니 뭐라도 가져가라고 반겨주었다. 물론 商品이 上品은 아니다. 균일하지 못한 모양으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하고 수십 개 열릴 듯 꽃이 폈다가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버리기도 했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주렁주렁 토마토는 벌레밥이 되었다. 일부는 수확해서 맛있게 먹기도 했지만 입속보다 땅바닥으로 더 많이 떨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이쁘게 잘 키웠다며 칭찬이 마르지 않았는데. 우리 토마토 당도가 높아 유독 벌레의 타깃이 된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위안을 삼지만  아쉽다. 벌레라도 배불렀으니 기부한 셈 치자. 이 정도를 수확하고 유지하는 것도 신통방통이다. 얼결에 텃밭을 받고 경험도 없이 인터넷에 의존해 키운 작물들을 내가 먹고 가끔 남에게도 나눠줄 만큼 되었다니 그만하면 되었다. 그러면서 이쁜 모양으로 우리 밥상에 오는 채소들이 얼마나 많은 노고를 품은 것인지도 새삼 느낀다. 거기에 살짝 농약도 품어야 예뻐진다는 것도.


방학기간에 알차게 2학기 계획을 세우는 학생처럼 하반기 계획을 세우며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재정비를 해보자. 몸도 마음도 더 예뻐져서 개학식에 만나자. 그때까지 모두가 무탈하기를.


*방학선물*

사마귀가 예고도 없이 텃밭 정자에 놀러 왔다. 책에서 봤던 사마귀랑 진짜 똑같아서 당연한 것에 또 신기했다. 당랑권이라도 보여줄까 자세히 쳐다봤지만 압도적인 두상에 움찔하고 돌려보냈다.

텃밭은 방학이나 개학이나 이렇게 무언가가 찾아오고 떠나가며 쉬지 않고 애쓰고 있을 것이다. 자연은 방학이 없다. 인간만 방학이다. 아니 쉬고 싶은 나만인가?. 아무튼 오늘은 텃밭 방학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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