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풍 갑니다
차를 타고 골프장 입장 : 클럽하우스 앞에서 차트렁크를 열면 아저씨들이 가방을 내려준다. 차 안에 앉아서 너무 건방진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살짝 드는 어색함이 있다. 이것도 지금은 아주 자연스러워지긴 했다.
체크인 : 선수 도착! 뭐 그런 뜻이다. 로비로 들어가 이름을 말하면 종이를 내어주고 이름, 전화번호를 적으면 확인 후 락카열쇠를 준다 (요즘은 키오스크 체크인도 많아지고 대부분 디지털 잠금장치로 되어있어서 이름과 락카번호가 쓰여있는 종이를 준다.)
락카 입장 : 대중목욕탕과 비슷한 샤워시설과 사물함이 있는 곳을 락카라 부른다. 그곳으로 들어가 골프복으로 갈아입는다. 긴장한 탓에 MAN, WOMAN 구별도 못하고 어리바리 대다가 남자락카로 잘못 들어갈 뻔했다. 첫날부터 큰일 날뻔했다. 코로나 이후 골프복을 입고 가는 문화가 생기긴 했지만 그전에는 평상복을 입고 가서 환복 후 플레이를 하는 것이 예의라 했다. 평상복이라지만 좀 갖춰 입어야 하는 느낌이 들긴 했다. 꼰대 마인드가 좀 있는 곳이라 볼 수도 있다.
식당 입장 : 라운드 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며 아침을 주문해 줬다. 인도 탈리처럼 각자 1인분씩 담아서 나온다. 식사 후 카트에서 마실 커피도 미리 주문해 놓으면 식당 나갈 때 담아서 준비해 준다. 계속 신기함의 연속이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호사였음을 이제는 안다
스타트하우스 : 카트들이 줄을 서 있는, 라운드 나가기 전 일종의 대기하는 장소다. 내 백이 실려있는 카트를 찾아서 라운드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하나씩 꺼내서 정리해 놓는다. (백에 이름을 안 써놔서 한참 헤맸다는 사실-이름 꼭 쓰시라. 골프화도 미리 빼놓으시길. 초보때 꼭 한 번은 하는 실수다.)
'오늘 머리 올리는 사람 있어요. 잘 부탁드려요'라는 말과 함께 캐디에게 인사 후 천지분간 못하는 선수가 있음을 미안해하며 수고할 캐디에게 약간의 인사성 팁을 주기도 한다. 머리 올리는 사람 있는 날 캐디가 엄청 고생하기 때문이다. 눈치가 빠른 편인데도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인 이 날은 감각이 떨어져 실수연발이다.
첫 홀 티샷 : 티를 꽂고 그 위에 공을 올려야 하는데 손이 부들부들. 이쑤시개 위에 공을 올려놓는 것처럼 공이 자꾸 땅 위로 떨어진다. 공도 못 올리는 애가 공을 치겠다고 나와있다. 의연한 척해보려 하는데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남들에게 들릴 것 같다. 공만 끝까지 본다. 어드레스 - 백스윙 - 팔로우스윙. 배운 대로치고 싶었으나 치고 싶은 대로 쳤다. 아무튼 쳤다. 휴~ 헛스윙은 안 했다. 동반자들이 '굿샷!'을 오버스럽게 외쳐준다. 분명 굿샷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지만 그냥 공 맞춘 게 대견하다는 응원의 외침 같은 것이다.
그늘집 : 18홀 중 절반을 돌면 들르는 곳이다. 중간에 충전도 하고 재정비도 하는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간단한 식사와 술을 마실 수 있는 또 하나의 식당이다. 그늘집이라는 말은 편안한 쉼터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일단 시켜주는 막걸리를 한잔 벌컥 마셨다. 전반 내내 긴장해서 뛰어다닌 탓인지 술은 달고 맛있었다.(지금은 술을 끊어 이런 재미는 없다.)
후반전 : 막걸리 탓인지 시간이 조금 지난 탓인지 전반보다는 덜 긴장한 채로 후반전을 시작했지만 버벅대는 건 똑같다. '18홀은 왜 이리 긴 것일까, 공은 왜 안 뜨는 것일까? 연습할 때는 잘 맞았는데, 이 말도 안 되는 퍼터 거리감은 무엇인가' 수많은 생각을 하고 그렇게 몸도 마음도 왔다 갔다 하며 모두 끝이 났다.
마지막홀 그린 : 모두 다 같이 장갑을 벗고 악수하면서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로 마무리가 된다. 진짜 나 오늘 수고했다.
뒤풀이 : 라운드 후 같이 식사를 하는 것도 골프 예의 중 하나란다. 일단 라운드가 끝나면 배가 고프기도 하고 그날의 운동 이야기를 하면서 수다 떠는 즐거움도 라운드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면 된다. 동반자들은 나에게 처음치고 잘했다고 소질 있다고 칭찬해 주었고 나의 첫 소풍은 비록 서툴렀지만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