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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Nov 04. 2019

아들은 엄마에게 영원히 차가운 남자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엄마가 여기서 왜 나와? 이건 또 뭐야?



새벽 땅거미가 떠오르는 동을 짓누르던 검은 시간. 오른쪽 눈두덩이를 붓게 찡그린 아들이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며 엄마에게 뱉은 말이다. 말을 뱉고도 답을 들을 의사가 없었던 듯, 쉬크하게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한다. 아들은 소리 내지 않고 문을 닫는데, 엄마는 소리 내어 웃느라 자지러진다.


엄마  나온 유튜브 봤어?
어때? 잘 나왔어?




해가 올라 하늘을 파란색으로 만들었지만, 아직 태양 주변엔 색과 오렌지빛이 어우러진 부산함이 남았다. 레인지에 살짝 데운 파스타를 욱여넣는 아들이 대답 대신 상체를 좌우 앞뒤로 흔들며 질문을 회피한다. 좋았다는 말을 소리 내어 하기 쑥스러울 때, 아들이 무심하게 멋있는 척 답하는 방식이다.


엄마 유튜브에 '좋아요' 눌렀어?
'구독하기'도 눌렀어?




쉬크와 sick을 넘나드는 아들이 이번에는 더욱 침묵으로 파스타에 집중했다.


남의 집 딸들은 '아줌마 너무 멋있어요'라면서 난린데, 아들은 이게 뭐니?




평생 들어온 엄마의 푸념에 쉽게 흔들릴 아들이 아니다. 다 받아주면 끝이 없다는 걸 아들은 충분히 잘 알기 때문이다. 대답 없는 게 긍정의 답변인걸, 이제 엄마도 알 때 되지 않았어? 아들의 눈빛이 텔레파시를 보낸다.


엄마가 너 시험 끝나면, 컨설팅 쫙 해줄게.



됐거든요!



아들이 이럴 때만 대답한다. 반드시, 꼭, 두 번 다시 대답하는 일 없도록, 마무리 짓고 싶을 때만 이렇게 아들이 또렷하게 소리 내어 대답한다.


"이십 년 지놈 키우면서 내가 격려해 준 말의 백만분의 일만 해줘도 소원이 없겠다. 아들."



아들이 무심한 무관심을 집 안에 남기고 학원으로 사라졌다. 어제 개국한 유튜브 채널을 클릭해서 구독자와 조회수를 깨금 눈으로 살펴봤다. 구독자 50명, 조회수 280회. 하루도 되지 않아 기록했다.


'이 정도면 조회수 만번은 금방일 거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설레발의 양분을 얻어 잡초처럼 쑥쑥 커간다. 개인 이미지 컨설팅을 캐리어로 시작해 문화살롱으로 문화사업을 시작한 팽정은 바이허 대표가 CEO 유튜브를 시작했다. 아직 3분짜리 영상만 첫 개시 했지만, 방송국 몇 개는 차린 쇼 비즈니스 우먼 같다.


모든 이야기는 기승전결을 가지듯이 모든 사업에는 [호기심-자기착각-좌절-또다시 망각]이 단계 별로 감정을 달리한다. 이제 팽 대표가 호기심을 지나 심각한 자기착각에 빠져 행복해 할 때다.


곧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늘어나지 않는 구독자와 항상 그만그만하게 억지로 채워지는 조회수에 실망하고 좌절할 것이다. 그러다 포기하거나 익숙해져 무뎌지거나. 익숙해져 무뎌져야 성공할 기미가 살아 숨 쉰다. 살아 숨 쉬는 게 그렇게나 어렵기 때문에, 성공이 얼굴을 내밀 때까지 버티지 못한다.


처음 타인과 타인의 사업체와 수치로 경쟁하는 시험장에 들어선 이상. 재미와 흥겨움 만으로 버틸 수 없다. 수십 년 사업가의 아내로 살아온 그녀가 모를 리 없다. 아니, 누구보다 피부로 체감하며 가슴으로 각인받아 깊숙이 새겨졌다. 그래서 항상 즐거운 그녀지만 심장에 새겨진 교훈의 낱말이 웃음 뒤 서늘한 긴장을 품어낸다.


그래서 인생은 살짝 미쳐야 한다니깐.



두 번째 동영상 콘티를 들여다보다, 에잇, 하고 덮어버린다. 그리고 얼굴 피부가 따스해질 때까지 두 손을 문질러 훈훈한 기운을 내어 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거울 속 그녀에게 말한다. 자신 있게.


그냥. 나 하던 대로 할래!



그날 밤. chic 아닌 sick하게 들어 온 아들이 여전히 말없이 자기방 문을 쿵 닫고 들어간다. 엄마가 똑똑 두드리며 "뭐 먹을거 줄까?"라고 말해도 아들은 답이 없다.


돌아선 엄마가 멋쩍은 맘을 잊으려, 유튜브 채널의 하나 뿐인 영상을 다시 틀어본다. 그리고 어김없이 구독자와 조회수를 확인한다. 그러다 익숙한 아들의 아이디가 쓴 댓글이 보인다. 횡경막 위로 기분좋게 따스한 목욕물이 채워진 따스한 느낌이다. 따스한 감촉이 눈의 표면까지 적신다.


눈물에 담긴 눈망울로 아들이 쓴 댓글의 활자가 볼록렌즈처럼 크게 들어온다. 그리고 소리내어 읽어본다. 아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힘내세요. 잘 될거에요. 항상 잘 했잖아요.



글썽이는 눈물을 훔치다 문득 아들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니 안고 싶다, 라는 감정이다. "똑똑똑, 엄마야. 들어가도 돼?", 기대가 한껏 부풀어오른 목소리로 물었다. 방문 너머 아들의 쇠된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엄마는, 그러려니, 헛웃음을 뱉은 뒤 쌩하니 뒤돌아섰다. 엄마가 아직도 문 앞을 지킨다고 여겼는지 또다시 아들의 쇳소리가 들렸다.


아, 좀! 자게 내버려 둬!
왜 자꾸 귀찮게 해!









(엄마의 유튜브를 시청하려면, '팽대표의 나를 찾는 TV')

https://youtu.be/UxWu_aZqu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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