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메바 라이팅 Oct 16. 2019

딸 대신 조카를 가슴에 품다

딸 같은 조카를 위해

여자들 몰래 화장실 뒷칸에 동서와 모여 담배를 피우다 나온 말이다. 큰 조카딸이 네 살, 둘째가 두 살이다. 벌써 4년째 동서와 둘이서 딸 타령이다. 나도 동서도, 즉 아내와 처제도, 아들 하나가 유일한 자식이다. 두 집 모두 녹록지 않은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보수적인 남도의 자손들이지만, 아들이 첫째이기를 바랐던 적이 없었다.


나도 저런 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큰 조카딸이 태어나 옹알이를 할 때까지 내 자식과 조카딸의 다른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애정이 별다르게 표현되지 않았다. 권위와 책임이라는 공기로 폐호흡을 하는 나이기에, 애정을 표현하는 놀라운 시도는 연애 시절 아내 하나로 족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들만 16년 키웠던 우리 가정에서 딸의 존재에 대해 부러워했던 적도 드물었다. 솔직히 딸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라마를 보면서 발현된 적이 있었지만, 실제 생활에서 그런 희망을 굳이 가져본 적은 없었다.


딸 가진 아빠를 부러워할 만큼 그다지 예쁜 딸이 없었는지.



일부러 작정했던 마음은 추호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주변에 딸 있는 집이 없다. 회사에서도 친구들 중에서도 딸 하나 없다. 게다가 동서네까지. 딸이 재롱을 부리니, 아들과 다르게 아빠와 대화를 나누니, 라는 먼 나라 전설은 우리와 관계없는 설국의 이상처럼 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3년 전부터, 고목으로 쉬어버린 내 심장에 피와 젖이 흐르더니 갑자기 따뜻한 김을 모략 모략 피워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앙증맞은 조카딸을 마주하면 심장은 통제되지 않는 rpm으로 치솟는 엔진처럼 쉬지 않고 뛰었다.



특별히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거나 말을 걸지 않는데, 옹알거리는 입과 씰룩거리며 걸어가는 모습만 봐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정신은 잠시 출장 가고 본능의 부성만 남아 조카딸이 넘어지고 일어나고 울고 웃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용기 내어 새삼 다가가 손가락을 조심스레 만져본다. 감히 손을 잡아선 안 될 것 같아 조심, 아주 조심스럽게 내 손가락 한마디에 다 들어오는 조카딸의 네 손가락을 펴 본다. 그리고 가만히 붙들고 있으면, '뭐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깨물어 주고 싶은 귀여움에 눈이 찢어지고 광대살이 승천한다.


"딸이라서 그런가?"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내와 처제는 "형부가 이제 늙어서 그런거야" 라고 말하는데, 아닌 것 같다. 난 정말 여자 가족을 원했다. 그래서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그 시간이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리고 조카딸이 뛰어와 두 손을 배에 올린 뒤 허리를 90도로 굽혀 '안녕하세요? 고모부.'라고 말하면 난 완전 무장해제 상태가 된다.


난 어려서 삼형제의 맏이로 컸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삼형제는 서로를 위하는 배려보다 서로가 뺏기지 않으려는 욕심과 상대적인 박탈감에 상처 받으며 성장했다. 그리고 인성이 모자란 부모 밑에서 나와 동생들은 정신적인 고통과 굴종에 치를 떨며 살았다. 항상 그 동네에 살던 어린 시절 나는 단호히 결심을 새기고 새겼다.


하루빨리 이 집에서 벗어날 거야.
결혼하는 여자를 위해서 절대 이 집에 다시 오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난 아내와 딸이 있는 나의 Sweet Home을 동경했다. 아들이 태어나고 2년이 지난 뒤 아내가 산부인과를 다시 들렀다. 그리고 내게 전화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여보~, 나 임신했어.", 한동안 멍한 기운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아내에게 전화 걸어 말했다. "여보~~ 축하해, 분명 딸일 거야."


한 달 뒤 정기진단 중에 뱃속의 아이가 심장을 만들지 못한 것 같다고 의사가 걱정했다. "무슨 소리야!" 난 크게 화를 냈고 아내의 손을 잡아 진료실을 나왔다. 눈물을 글썽이며 어찌할 바 모르는 아내 곁에서 나 역시 붉어지는 눈동자를 들키지 않으려고 막무가내로 주차장을 향했다. "대학병원에 가보자.", 나는 바로 차를 몰았다.


크게 고성을 지르며, 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냐고!,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해 억울하고 비통한 마음이 허공을 찢었다. 아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울다 그친 아내가 갑자기 나를 향해 "그만 하고 가자.", 라며 재킷을 잡아당겼다. 우리 부부는 그 날 말없이 각자 다른 방에서 서로에게 침묵의 시간을 배려해 주었다.


나는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는 아기를 갖지 않도록 할 것이다, 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비겁하게 OO이 아들에게만 모든 애정과 노력을 쏟자고 결심했다. 비겁했다. 그리고 미안했고, 가슴이 심하게 아팠다.



조카딸이 혼자일 때, 처남댁에게 미안하게도 아내와 나는 조카딸을 몰래 데리고 삼성동 아쿠아리움과 63 빌딩 아쿠아리움으로 갔다. 동물이 보고 싶다고 하길래, 서울대공원으로 추운 11월에 조카딸을 데리고 데이트했다. 아내의 옷은 조카딸이 걸쳐 입고, 내 옷은 아내가 걸쳐 있었다. 벌벌 떨면서 2시간 넘게 야외를 걸어도 감기 기운 하나 생기지 않았다.


조카딸이 처남과 함께 처남댁의 독감의 피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 인사하는 조카딸에 또다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제 신고 온 조그만 신발이 해져 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내를 설득하고 간청해 조카딸을 데리고 집 근처 백화점에 갔다. 조카딸은 여우가 맞다. 정말 여우다, 라고 확인하니 너무 예뻐 죽을 지경이었다. 조카딸이 예쁘다고 가리킨 신발은 아내가 좋아하는 명품 슈즈였다. 다행히 발 사이즈도 맞더라. 기분 좋게 결재하고 걸어가는데 뒷사람들이 깔깔거렸다. 뭐지?, 하고 뒤돌아 본 순간 내 주머니에서 추가로 돈 새는 소리가 들렸다.


새 신을 신고 두 발을 번갈아 번쩍번쩍 들어 올리며 깔깔 웃는다. 주변의 스태프들과 물건 고르던 손님들도 까르륵 웃는다. 에고, 그리도 좋을까, 정말 딸은 다르구나.


신발에 어울리는 재킷을 다른 명품샵에 들러 샀다. 발렛을 맡겨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다 마네킹의 야리한 치마를 보고 지나칠 수 없어 또 샀다. 들르는 샵마다의 옷과 신발을 모두 입은 조카딸이 여우처럼 웃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고모부, 고맙습니다." 웃으며 날 안아주었다. 그리고 볼에 뽀뽀까지.


그래, 갖고 싶은 거 다 사!



재수하는 아들의 얼굴을 잊은 지 오래지만, 조카딸의 앙증맞은 웃음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어릴 적 이를 갈며 복수하고 싶었던, 그래서 내가 보란 듯이 부모와 다르게 사는 가정을 꿈꿨던, 그 가정의 내 딸이 아니었을까, 위로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