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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난파된 조선의 음악가

[제국의 화양연화 시리즈]

by 아메바 라이팅

2층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온 하인 남자가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영교에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위층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곧 식사와 함께 와인을 올리겠습니다."

남자는 영교에게 스스로 이층으로 올라가라는 듯이 오른팔을 이층 방향으로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면서 허리를 굽혔다. 영교는 약간의 설렘으로 떨리는 가슴을 오른손으로 넓게 누른 체 한 계단씩 천천히 발걸음을 올렸다. 2층 복도를 잠시 걷자 선명한 음악 소리가 들렸고 그 음악소리가 가장 크게 울리는 방문 앞에 멈춰 서서 나무문의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애수의 조선, 이라고 예전에 용산옥에서 들어 본 축음기 소리가 하수구의 배설물이 쏟아지듯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빅타 축음기 옆에서 안쪽 창을 바라보며 팔짱을 낀 채 불분명하게 들리는 중얼거림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던 선생님이 고개를 돌렸다. 30대로 보이는 곱고 하얀 피부와 가름한 얼굴 모양이 영교의 눈에 들어왔다. 나이보다 적게 보이는 천부적인 동안의 도련님일 거라고 생각했다.

투명한 안경알 뒤에 예쁘게 자리 잡은 눈동자가 영교를 바라보자 금세 커져 올랐다. 창가에 마련된 식탁 위로 남자 하인이 꼬부랑 글자가 휘갈겨진 와인 한 병을 올려두고 다른 문을 열고 총총걸음으로 나갔다. 영교가 들어온 문과 달리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의 작업실로 드나들 수 있는 전용문인 듯했다.

영교의 목 뒤로 순식간에 다가온 선생님은 그녀의 외투를 받아 들어 그녀가 들어온 문 옆의 옷장 속으로 구겨 넣었다. 영교의 기모노 속 몸을 훔쳐보다 걸린 소년 마냥 선생님은 고개를 떨어뜨렸고 앞서 나가려다 본의 아니게 영교의 허리를 살짝 건드린 뒤 식탁의 상석 의자로 몸을 묻었다.

세로로 돌려진 식탁에서 선생님이 자리를 먼저 잡았고 이내 그 맞은편의 식기 앞으로 영교가 마주 앉았다. 선생님은 젓가락을 쥔 손으로 식사를 권하는 손짓을 두어 번 했다. 모츠나베와 뒤집어 구운 만두가 영교에 입에 녹아들었지만 조선에서 익숙해진 조선 음식은 그날따라 식도를 쉽게 타지 못했다.

고관 지성인이신 선생님 앞에서의 식사는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왔다. 왠지 조선 음식에 손을 댄다면 영교 스스로가 자신을 하대한다, 라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선생님은 스시와 치쿠젠니를 번갈아 집으며 와인을 이빨로 씹어 드셨다. 영교도 선생님을 따라 입에 머금은 와인을 양칫물에 이를 헹구듯 이빨로 아작아작 씹었다. 과장되게 움직이는 영교의 턱을 바라보며 선생님은 입을 열었다.

"나는 황이라고 불리는 음악가일세."

자기를 소개한 뒤 축음기 빅타를 흘깃 쳐다보았다. 저 곡도 ....., 라고 고개 숙여 나지막이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자랑하려는 듯 말했다. 식사를 마치자 하인 남자가 다시 나타나 식탁 위를 깨끗이 치웠다. 선생님은, 이제 부르면 오도록 해요, 라고 남자에게 말했고 영교는 마음의 준비를 끝마쳤다. 오기 전에 깨끗이 씻었습니다, 라는 말을 시작으로 영교가 보시를 시작했다. 황 선생님은 축음기의 판데기를 바꾸어 ‘라 캄파넬라’라는 바이올린 연주곡을 틀었고 안경을 벗어 축음기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두어 걸음으로 영교에게 다가 온 황 선생은 상의를 하나 없이 벗어던졌고 무릎 꿇은 영교는 선생의 바지부터 속옷까지 남김없이 벗겨 주었다. 강렬한 바이올린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극에 다다르자 황 선생은 영교의 틀어 올린 머리 꽁지를 움켜잡아 자신에게 힘껏 잡아당겼다. 황 선생 아래에서 얼굴 볼이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영교는 선생을 올려다보며 기모노를 뒷손으로 완전히 벗겨 냈다.

황 선생은 영교의 입속 혓바닥에 흥분하며 가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때 드러나는 영교의 어깨와 엉덩이 선을 한 번이라도 더 새기려는 듯 계속하여 가는 눈 속의 초점을 그곳으로 고정하려 안간힘을 썼다.

침대에서도 영교는 성심을 다해 황 선생을 보필하며 자신의 몸과 혓바닥이 기억하는 모든 기교를 파노라마처럼 연출했다. 세 번의 격정을 치른 황 선생은 여전히 졸졸 흐르는 그의 수돗물을 멈추지 못해, 보들보들한 손수건으로 틀어막았다. 선생은 영교의 얼굴과 겨느랑이를 남김없이 핥고 핥았다. 마치 영교의 땀샘을 황 선생의 침으로 가득 채우려는 듯 선생은 흥분을 멈추지 못했다.


자신의 겨느랑이에서 떨어지지 않는 황 선생을 바라보며 영교는 모성애를 느꼈다. 애기가 엄마에게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황 선생은 영교의 몸을 한시도 떼어놓지 않았다. 온몸을 비비면서 영교의 얼굴과 겨느랑이를 자신의 혀와 입술로 극진히 숭배했다. 새벽이 오도록 영교는 황 선생에게 그녀의 몸 세포 하나하나를 내맡겼고 황 선생은 새벽 네 시가 넘어서야 핥다 지쳐 잠들었다. 잠든 그 순간에도 황 선생은 영교의 엉덩이에 자신의 사타구니를 바짝 붙였고 다른 자로부터의 정절을 지키게 하려는 듯 영교의 사타구니 위를 자신의 왼손으로 감싸 올렸다. 정조대를 탄탄한 묶은 자물쇠처럼.

새벽 여섯 시가 되기 전에 선생의 손발을 살포시 떼어 놓고 침대 밖으로 몸을 빼냈다. 그리고 챙겨 온 손수건으로 간단히 뒷물을 닦았다. 입고 왔던 기모노를 단정히 매문 뒤 걸쳐 온 외투는 간단히 팔에 걸어 문 밖으로 얌전히 빠져나왔다.

메마른 나무 바닥의 뒤틀리는 소리가 황 선생의 새벽잠을 깨우지 않도록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1층 큰 거실까지 내려왔다. 지난밤 그대로 서양 조끼를 걸쳐 입은 남자 하인이 서양식 바지로 바꿔 입고서 나무 의자에 앉아 영교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천히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영교에게 크게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 하인은 돈이 든 봉투와 함께 경성제국민방 마크가 눈에 띄는 청취권 세장을 손에 쥐어 주었다. 돌아오는 인력거 안에서 하인이 쥐어 준 세련된 청취권을 다시 꺼내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 새겨진 이름들 중에 황 씨 성은 단 한 명뿐이었고 영교는 황 선생의 이름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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