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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테스의 질투

[제국의 화양연화 시리즈]

by 아메바 라이팅

조선군이 빠져나간 지 네 달이 지났다. 용산은 떨어진 매상과 날아간 외상값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거나 규모를 줄이는 점포들이 늘어났다. 특히나 유곽은 조선인보다 일본 병사와 장교들이 주 고객이기에, 경성역이 새 상권을 만들어 이권을 앗아갔을 때와 비교되지 않았다.

테스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유녀와 기생들을 내보내기 바빴고 하녀들은 만일을 대비해 얼굴이 반반하고 벗을 몸이 예쁠만한 젊은 애들로 남겨 두었다. 색정이 흘러 사내들의 일탈을 흥겹게 만들어줄 매력이 충분했던 영교가 떠올라 가끔이나마 아쉬워했다. 하지만 타츠야의 용돈으로만 요시와라에서 지내야 했던 영교도 아쉽기는 테스와 마찬가지였다.

가끔 멋 부리며 타츠야를 맞기라도 하는 날이면, 영교는 틀어 올린 머리에 붉은색 비녀를 끼우고 도자기 같은 하얀 화장 분으로 치장했다. 가는 눈에 사랑스러움을 머금은 정교한 일본 인형과도 같았다. 내리깐 눈으로는 감정을 찾기 힘들었고 몸을 감싸는 늦가을 공기는 체감보다 차갑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녀가 토해 내는 숨결은 상쾌한 가을 공기를 뚫고 날아가는 화살이 되어 바라보는 남성들의 심장에 욕정의 피바람을 용솟음치게 했다. 쓰러지며 간절히 애원하는 남성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영교였지만, 타츠야의 형상이 비슷하게라도 비춰질 때면 이내 그녀는 입술 끝을 올리고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월을 넘어가기 전부터 타츠야는 용산옥을 지키는 테스에게 더 이상 둘러댈 핑계거리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무단으로 밤을 건너뛰는 날들이 늘어났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나 타츠야가 어린 남자 하인을 심부름시켜 돈을 쓸 수 있었다. 테스는 타츠야가 남자라는 것에 관용한 지 오래여서, 눈앞에서 용산옥의 여자들과 놀아나지만 않는다면, 이라는 조건 하에 그녀는 그의 수많은 일탈을 눈감아 주었다. 그때도 용산옥의 여자가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에 테스는 눈감아줄 수 있었다. 어느 동네 유곽에서 산토끼를 끼고 놀며, 손님 떨어진 용산옥에 대한 불안감을 몸 밖으로 사정하며 위안받고 있을 것이라 자위했다. 그리고 영교만은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절대 한 번이라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녀와 함께 하지 않는 타츠야의 부재와 하염없는 그의 씀씀이에 불안감이 커져 가던 테스는, 이윽고 타츠야를 골탕 먹이기 시작했다. 테스와의 섹스 없이는 현금으로 쥐어 주는 용돈의 씨를 말렸다. 테스가 아니면 금고를 열 수 없도록 조작하여 타츠야의 손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게다가 유곽의 돈 통은 아무리 뒤져봐도 손에 쥘 만한 지폐 뭉치들이 보이지 않은 지 오래였다. 쇼군을 위해 전국의 다이묘들이 감내한 산킨고타이처럼 타츠야는 용돈을 무기로 권력을 휘두르는 테스를 위해 그만의 산킨고타이를 감내했다. 다른 유곽에서 무슨 짓을 하든 어느 년에게 빠져 지내든, 테스에게 정기적으로 정착하라는 압박이었다.

테스는 큰 비명이나, 큰 울음이나, 큰 욕 하나 없이, 배 밑바닥까지 닿을 듯한 낮은 목소리로 넌지시 내밀었을 뿐이다.

"나, 테스를 위해 며칠 밤은 남겨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기도하는 듯한 절실함이 흘러넘쳤다.

용산옥 3층 목욕탕에는 자기 공예 장인이 한 달여간 형이상학적 동그라미들을 이어 붙인 자개 목욕통이 있다. 남녀가 들어가고도 남을 에도 시대 풍의 큰 통과 사람 하나 정도 들어갈 중간 크기의 목욕통, 그리고 뒷물을 닦을 때 쓰기 좋은 아가리만 넓게 벌어진 낮은 통이었다. 소좌 이상의 최상급 손님이나 귀족들만을 위해 내어 놓던 목욕통들이었다.

손님이 없어 사용할 일도 뜸해졌다지만, 이제는 테스 부부가 사용할 만큼 애절한 힐링이 필요했다. 테스는 가장 큰 목욕통에 먼저 들어가 십여 분이 넘도록 즐기며 스스로를 흥분시켰다. 늘어진 상체를 통 속 벽 깊이 드러눕듯 기댄 뒤 눈꺼풀을 가늘게 뜬 채 타츠야를 기다렸다. 어린 하녀가 여주인을 위해 사분과 물수건을 대령한 뒤 곧바로 타츠야에게 달려갔다.

"주인어른, 마님께서 등을 밀어 주실 수 없는지 여쭙기를 바라십니다."

일본식 조선말이다. 강요나 앙탈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순전한 애원이지만 타츠야에겐 러시안룰렛과 같은 선택이었다. 한두 번의 거절이나 핑계는 용서되겠지만 언젠가 주워 담을 수 없는 불가역의 상흔을 남기게 될 것이다. 이윽고 강요된 연민과 자발적 배신 속에 테스의 젖은 몸을 뜨겁게 달궈 주었다. 그녀의 가는 눈을 아예 덮어버릴 흥분이 더해지도록, 타츠야는 그녀를 뒤덮은 목욕물이 주는 퍽퍽한 불편함을 수없이 감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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