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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노교수의 고장 난 수도꼭지

[제국의 화양연화 시리즈]

by 아메바 라이팅

황 선생이 하인을 통해 건네 준 돈 봉투에는 칠십 엔이 청취권 뒤로 숨겨져 있었다. 약속대로 요시와라 여주인이 십 엔을 떼어 가는 바람에 영교는 남은 육십 엔으로 밀린 방세와 술값을 지불했다. 계산 속 기억이 맞니 틀리니 여주인과 실랑이를 하다 보면 남는 돈보다 줘야 할 빚만 명료하게 정산됐다. 왠지 계속 속는 듯한 기분에 영교는 찜찜한 뒤를 닦지 않은 느낌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여주인은 그다음 주에도 황 선생이 영교를 애타게 찾는다며 다리를 놓았다. 두 번째 맞은 황 선생은 영교의 몸을 향해 아침 해가 어둠과 싸워 이길 때까지 집착을 늘어놓았다. 그날 황 선생은 비탄스런 표정으로, 나 이제 완전한 황국 신민으로 거듭났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안도의 한 숨도 크게 내쉬었다. 결코 알 수 없는 황 선생의 마음을 영교는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타고난 조선의 피를 천황 폐하를 위한 신민의 피로 깨끗이 갈아 바꾸겠다던 황 선생은 이후 길지 않았던 자신의 생을 다해 그날의 결심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영교의 무관심이 하나님에게 전염되어 황 선생을 단명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황 선생님은 너무 몸을 힘들게 하셔요, 너무 힘들게 덤비셔요."

이후의 황 선생 초청을 영교는 모두 거절했다. 그러자 여주인은 다음 달 방값을 깎아 주겠다면서 영교에게 한 번 더 보시를 부탁했다. 오십 엔이지만 잘 서지 않는 노친네라서 이런저런 이야기만 들어주면 된다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래도 여주인에게 떼어 줄 뽀찌는 십 엔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타츠야 몰래 빈 밤 시간에 후쿠자와라는 일본인 학자의 저택으로 향했다. 도쿄제국대학 교수였다는 이 노학자는 도쿄에서의 은퇴식을 끝내자마자, 식민지 지식인들의 지적 배고픔을 채워주기 위해 여생을 보내고 싶다, 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 조선의 경성제국대학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언뜻 칠십 비슷하게 보여도 굳은살 없이 매끈한 손마디와 기름진 이마를 보면서, 평생을 교수실에서 지내며 연장이라고는 연필밖에 만져본 것이 전부이겠다 싶었다.

가타부타 인트로도 없이 서재에서 기모노를 홀딱 벗긴 후쿠자와 노교수는 아라비아 8자의 모양을 닮은 영교의 매끈한 몸을 손끝의 예민한 감각으로 구석구석 탐미했다. 사각형의 서재가 된 방은 양쪽으로 붙박이 책장과 그 속의 책들이 양쪽 공간을 채웠다.

자연스럽게 중간 복도 형태로 내부 공간이 만들어졌고 유럽 엔티크풍의 탁상이 네 개의 등받이 없는 의자들과 함께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거대하게 똬리를 틀어 올린 머리를 알몸으로 이고 있던 영교에게 후쿠자와 노교수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도록 명령했다. 둘이 바라보도록 마주 앉은 노교수는 미국에서의 체험담, 난학, 문명론, 탈아론을 설명하며 대일본제국과 대동아가 함께 서구의 제국주의 열강들의 야욕을 분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주제가 격앙되거나, 영교가 지루해하거나, 하면 참을 수 없다는 듯 괴로운 표정과 가늘고 긴 신음소리를 뱉어내며 유카타 속에 축 늘어진 자신의 늙은 물건을 꺼내 왼손으로 힘겹게 만지작거렸다. 손으로 만지는데도 더욱 늘어지고 얇아져 금방이라도 으깨져 사라질 것 같았다. 정력의 힘이 돌지 않아 매서운 손 물림에 따가워하기도 했지만 두어 번 정도는 정말 정맥이 다가오기라도 했는지 움직이는 기색이 보이기도 했다.


평생 뿜어낼 수 있는 정액의 양을 이미 대부분 탕진해서인지, 후쿠자와 교수가 분출하는 용량은 고작해야 새벽안개 서린 풀잎 끝에 동그라니 맺힌 이슬방울과 같이 희귀했다.

이렇게 열정적인 노교수의 강연이 끝날 때까지 영교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뒤틀림 없이 체모를 드러낸 채 무릎을 모은 자세로 그림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교수들은 열띤 강연을 마치면 손을 더럽힌 분필 때를 수돗물에 깨끗이 씻어내는 의식을 치른다. 노교수는 벌떡 일어나 영교 곁에 다가가 자신의 유카타 왼쪽을 걷어 올렸다. 그러자 끈적이는 액체가 진득한 침처럼 묻어 있었다.

영교가 사뿐히 무릎 꿇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방울을 입에 담으려는 듯 고개를 들어 입 속으로 노학자의 욕정을 집어삼켰다. 노학자가 베푼 값비싼 강연의 부산물은 그에게 묻은 더러운 손 냄새와 몇 방울 새지 않은 정액뿐이었다.

영교는 열렬한 노학자의 후원자이자 관객인 것처럼, 늙어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제국주의의 정신적 기둥이 상처 받지 않도록, 그리고 감염되지 않도록, 극진히 숭상하고 조심스레 보살펴 주었다. 따뜻한 여느 처녀의 자궁보다 더 황홀한 영교의 입 속에서도 후쿠자와 노교수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질질 흐르는 수돗물은 멈추지 않아 가로 걷은 유카타 자락에 풀칠 같은 얼룩 범벅으로 묻어났다.

기력이 달렸는지 강연하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탁상 위로 팔꿈치를 디디고 얼굴을 파묻었다. 아무 말도 없고 미동도 보이지 않자 미리 챙겨 둔 돈 봉투를 가슴에 여민 체 영교는 기모노를 챙겨 입었다. 그리고 발가락 앞으로 힘을 준 살 걸음으로 방문을 조용히 열고 나왔다. 원래 닫혔던 그 문을 제자리로 닫을 때까지, 방 안의 마지막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노학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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