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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주한 광녀의 얼굴

[제국의 화양연화 시리즈]

by 아메바 라이팅

뛰어가는 영교의 몸 뒤로 사라지는 조금 전의 회색 안개처럼 노학자의 강변을 뒤로한 채, 영교는 타츠야가 타고 있을 새벽 기차를 맞으러 경성역을 향했다. 불량한 남정네들의 위협이 다가올 틈이 없도록 옷매를 흘겨볼 시간도 없이 기모노가 갈라지도록 큰 보폭으로 쉬지 않고 뛰었다. 오르페우스가 자신의 사랑을 지키지 못한 과오를 영교는 절대 저지르지 않기 위해 눈 앞의 길바닥만을 보고 달렸다.

숨이 가빠올 때는 보폭을 쉬이 하며 숨을 고르고, 다시 여력이 생긴다 싶으면 남들이 허벅지 사이로 보이는 가랑이를 쳐다보든 말든 있는 힘껏 넓은 보폭으로 뛰었다. 그저 타츠야를 향하는 마음만이 그녀의 머리와 육체를 조종하고 있을 뿐이다.

경성역이 먼발치에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자 담배 한 대를 성냥불에 지져 붙였다. 타츠야는 달리는 차장 밖으로 고개를 빼내어 매캐한 담배 연기를 휘날렸다. 한 줄기 연기가 유독 매워 타츠야는 질끈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을 삐지고 나온 긴 눈물 자락이 연기를 따라 함께 사라져 갔다.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해 역류 속의 거센 바람이 마지막 한 방울의 눈물까지 말끔히 씻어갔다. 깨끗이 씻어진 기분이 카타르시스를 샘솟게 했다.

경성역 바닥을 디디고 내린 뒤 광장까지 걸어 나온 타츠야는 인력거를 기다리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입에 문 담배를 지필 불을 찾으러 허리춤을 뒤지던 타츠야의 코앞에 빨간색 성냥 머리를 까만 재로 만든 파란 성냥불이 나타났다. 분홍색 가장자리 너머로 투명한 불의 열기 속에 영교의 하얀 이가 도드라져 보였다.

볼이 움푹 패도록 깊게 빨아들인 후 하얀 연기를 다시 뱉었다. 입으로 불지 않아도 차가운 바람이 절로 불어와 성냥불을 꺼뜨린 새벽 아침. 영교의 얼굴은 땀범벅이었고 머리칼은 헝클어져 여기저기 땀을 접착제 삼아 피부에 닿는 곳이면 아무렇게나 붙어 있었다.

차례가 되어 둘 앞에 다가 온 인력거에 재빠르게 올라 탄 뒤 영교의 자지러지는 속삭임이 인력거 안을 가득 메웠다. 경성역 밖 사람들이 부산하게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타츠야는 연거푸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집안의 구린내를 촛불이 정화시키듯이 다른 남자의 정액 냄새를 담뱃불로 잊으려는 것 같았다. 영교에게서 다른 남자의 정액 냄새가 순화될수록 타츠야의 머리와 허파 속은 담배연기로 채워져 둔탁해갔다.

요시와라로 돌아온 아침 여덟 시 반. 모두가 조반을 마치고 잠시의 단잠을 위해 베개에 머리를 파묻을 시간이다. 다다미 네 장 반짜리 객실에 자리를 펴고 누운 타츠야를 위해 영교는 부엌을 뒤져 차가운 얼음 한 덩이를 입에 물었다. 십일월의 추위도 식히지 못한 영교의 입 안을 얼음장처럼 차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깊지 않은 잠의 경계 사이에서 망설이며 머뭇거리던 타츠야의 훈도시를 벗기고 얼음송곳 같은 혀끝으로 그의 귀두를 살짝 찍었다. 타츠야가 놀라 움찔하기도 전에 얼른 영교는 얼음 담은 입으로 집어삼켰다. 화들짝 놀랐을 타츠야의 표정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올린 영교의 얼굴은 식탐 많은 어린아이가 눈깔사탕 두세 개를 입속으로 욱여넣은 것처럼 볼이 터져라 불룩했다.

영교의 정성에 힘입어 타츠야의 성기가 하늘을 향해 똑바로 일어섰다. 얼른 그의 사타구니 위로 올라탄 영교가 자신과 합을 맞추었다.

"내가 올라가는 게 더 좋아, 정말 좋아."

그녀가 즐기던 상위 체위를 취하며 그녀는 이내 흥분의 도가니로 빠졌다. 방바닥에 드러누운 타츠야는 손깍지를 그의 머리 뒤로 끼운 채, 귀로는 신음소리를 듣고 눈으로는 영교의 찢어진 흰자위를 바라봤다.

“으음” 하고 나지막이 긴 신음을 자아낸 타츠야는, 깊고 습기 찬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헝클어진 머리칼 속에 흰자위를 번뜩이며 자지러질 듯 거센 숨을 몰아쉬던 이미지가, 타츠야의 눈꺼풀 안쪽에 깊이 새겨져 사라지지 않았다. 영교와의 섹스는 눈을 감고도 생생하게 오감을 자극했다. 몽롱한 꿈의 경계선에서 타츠야가 갑자기 호출되어 현실의 한 편으로 떨어졌다. 급기야 그의 눈 앞으로 악마의 얼굴이 다가왔다.

타츠야의 망막에 화상이 맺힌 것인지, 그의 영혼이 환각을 일으킨 것인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있는 힘을 다해 타츠야의 목을 조이는 광녀의 얼굴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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