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8. 노기 멱을 잘라낸 에이코

[제국의 화양연화 시리즈]

by 아메바 라이팅

"에이코가 중위를 사랑한 거예요."

마치 도쿄라고 불리는 낯선 지방의 설화 같은 이야기를 술안주로 차린 듯이 공병 소좌에게 한잔 술과 함께 들려주었다.

돈 많은 여타한 손님들보다 세상을 향해 멋모르게 질주하는 한 낭만주의 젊은이가 유녀로 나이 든 에이코의 가슴 깊은 곳을 차지했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집착으로 커져갔지만 그 집착을 함께 즐기던 에이코와 달리 노기의 유효기간은 만기 시효를 채워 갔다.

노기는 집착보다 이성적인 관계 속의 섹스와 로맨스를 쫒아갔지만 에이코는 커져만 가는 집착을 통제 못해 광기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노기가 마음 놓고 자신을 계속해서 찾을 수 있도록 돈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었다. 그래서 유타카와 같이 마구 돈을 허구잡이로 써 댈 만한 손님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이코가 그럴수록 노기는 그녀를 더욱 두려워하며 수십일 동안 월화 유곽 출입을 끊기까지 했다.

어느 날 전별 가는 해군 소좌가 후배 장교들을 위해 월화 유곽에서 조용한 회식자리를 마련했고 껄끄럽지만 상관의 체면을 생각해 노기 중위가 어쩔 수 없이 참석하기로 했다. 예정된 초대 시각보다 한 시간 늦게 참석했다.

유녀 없이 조용히 술 한 잔 마시다 가겠다, 라며 조용히 술 한 잔 기울이던 노기 중위의 마음을 맞은 편의 누군가가 크게 착각했다. 간단한 샤미센 공연이 끝난 뒤 게이샤들을 물리자 그 속의 게이샤 하나가 얼른 에이코에게 달려가, 노기 중위가 무언가 사고 칠 것 같아, 라며 노기 중위가 유곽에서 심각한 얼굴로 술을 마시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에이코는 어린 하녀를 불러 조그만 쪽지를 두 번 가로 접어 손에 쥐어 주었다. 다들 술이 취하기를 기다렸다가 반드시 내가 사랑하는 노기 중위님께 올리도록 해야 한다, 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떻게 내가 여기 온 걸 아는 걸까, 술에 취해 기생과 유녀들을 벗겨 노는 동료들 사이에서 에이코의 쪽지를 받아 든 노기 중위는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며 변소 핑계를 댔다.

별빛이 가장 밝게 휘황할 만큼 어둠이 가장 깊어진 시각이었다. 변소를 들르는 척 하다가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러 시간 동안 혈류를 타고 융해된 사케 알코올로 인해 쪽지 속 에이코의 방 앞에서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강렬하고 깊은 신음소리가 유난히 귀에 익숙한 방 앞이었고 노기 중위는 살며시 한쪽 눈만 치켜들고 문 틈으로 그 방안을 훔쳐보았다.

군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머리를 문으로 향해 누웠고 그 위의 유녀가 엉덩이를 같은 방향으로 돌아 엎드린 모양으로 남자의 얼굴에 파묻었다. 남자의 성기를 빨고 있는 유녀의 검은 머리채는 위아래로 쉼 없이 흔들렸고 엉덩이에 파묻힌 남자의 얼굴은 혓바닥과 함께 음부 속에 파묻혀 있었다.

남자가 사정을 했는지 여자의 음부 겉살을 베어 물 듯 힘주어 머금었고 여자의 검은 머리통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노기 중위는 자신의 성기가 더 이상 정액을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시 방안을 들여다보자 갑자기 남자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등 라인이 매혹적이라고 여겼던 유녀가 살포시 일어나 전깃불을 끄고 가로누운 채, 한 손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희미한 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 손가락 끝의 감각만으로 단정히 머리를 매만질 수 있는 초능력이 있는 것처럼. 욕정을 참지 못한 노기 중위는 언제 남자가 다시 들어올지 알지 못했지만, 언제 남자가 들어올지 알았다 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어둠 속으로 들어가 유녀를 핥고 홅으며 구석구석을 탐했다.

"노기, 너무 사랑해."

익숙한 체내와 살맛이었지만 노기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고 익숙한 에이코의 신음소리였지만 노기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의 익숙함에는 친절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친절이 없다 해도 사람의 익숙함이란 욕망을 해소한 뒤 여지없이 찾아오는 이성으로 인해 보란 듯이 제 기능을 작동하는 법이다.

사정을 마친 노기는 섬뜩하게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식은땀에 정신을 차렸다. 노기는 그대로 무릎을 펴고 일어나 전깃불을 켰고 에이코의 광기 어린 눈빛과 마주쳤다. 분노가 치밀었다. 벗어 놓은 상의를 대충 걷어입으며 아래 바지를 찾던 그의 손을 그녀가 황급히 낚아챘다.


"제발 가지 마! 사랑해!"

간절히 애원하며 그의 성기 앞으로 입술을 내밀려했지만 그의 역겨움이 동력원이 된 거센 발길질이 그녀를 멀찍이 떼어 놓았다. 에이코는 노기의 군복 바지에 매달리며 덫에 발목이 잘려나간 짐승처럼 크게 울부짖었다.

이윽고 노기의 허리띠 오른편 뒤로 달랑거리며 흔들리던 검집이 에이코이 눈에 들어왔다. 쇠로 만든 똑딱이가 떨어져 벗겨진 검집 커버 아래로 총검 날이 전깃불에 반짝였다.
그녀는 노기의 왼쪽 목을 가로 그은 뒤 뿜어지는 피를 막으며 벌벌 떠는 그의 심장에 칼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깊이 더 깊이 온몸으로 눌러 칼날 모두를 그의 심장 속으로 박아 넣었다. 검집 밖을 뛰쳐나온 총검 날은 더 이상 전깃불에 반짝이지 않았다.

keyword
이전 17화17. 조선군 출정전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