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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선은 아이를 자라게 한다

: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by 윌버와 샬롯

제목마저도 너무 울적하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니. 아이야, 절대 그렇지 않아.


이제는 좀 어른이 됐다고 우리는 조금 안다. 결코 그런 사람은 없다는 걸.


눈에 띄게 잘하는 게 있는 사람, 그리 흔하지 않더라. 내 품 안에서만 있던 아이도 이 세상 누구보다 잘난 아이인 줄로만 알던 때도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아이를 내가 어떻게 낳았지 하며 말이다. 그러나 품 속에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니 다른 잣대가 들어선다. 내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거구나 싶을 때가 생기며 아이에게 걸었던 기대도 하나씩 접게 된다.


이상하다. 아이는 그대로인데 왜 엄마 마음은 그렇게 변하게 된 걸까. 태어나서는 그렇게 한없이 우월했던 아이는 어째서 점점 열등해지고 있는 걸까.



아직 어린데, 그 안에 어떤 힘이 있을지 모르는데 벌써부터 의기소침한 이 그림책 주인공 사랑이가 안쓰럽다.


사랑이는 남들이 알아줄만하게 잘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스스로도 찾지 못했고 다른 어느 누구도 사랑이에게 무엇을 잘하는지 말해주지 않았었나 보다.


그래도 사랑이는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더군다나 고민을 들어줄 친구가 있어서, 진지하게 마음을 헤아려주는 단 하나의 친구가 있어서 말이다.


하루가 지나서야 친구는 사랑이의 좋은 점을 말해준다. 누구보다도 너의 손이 따뜻하다고. 친구 말에 용기를 얻고 누구보다도 따스한 손으로 다른 친구의 차가운 손을 포근하게 해 주며 사랑이는 자기 존재 이유를 찾는다. 그렇게 사랑이가 만족하며 이야기는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러 아이의 손을 데워주다 보니 본인 손이 금방 차가워진다는 설정에서 좀 반전이라 생각했다. 이 시무룩한 전개는 뭐지? 손이 가장 따뜻하다고 애써 잘하는 것을 찾아준 친구, 작은 것 하나를 찾았지만 그러나 금세 그 이유가 사라지니 참 머쓱하기도 하다.


손이 따뜻하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 있을까. 그 말이 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위로랍시고 너무나 터무니없는 명목을 애써 친구가 끄집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한 건 아닌지. 구태여 억지로 잘하는 것을 그렇게라도 찾아 말해줘야 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난 잊었다. 아무리 그것이 억지라 해도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따뜻한 시선을 받은 사람은 거기서부터는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는 차가워진 손으로 자신한테 다시 실망했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친구를 발견하고 또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나아가 자신도 친구처럼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전엔 정말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던 사랑이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다른 사랑이가 된 것이다.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말이다.


아이는 모를 수 있다. 어떤 것이 나를 빛나게 하는지. 솔직히 어른인 나도 여전히 모른다. 하물며 아이는 어떠하랴.


우리에게 사랑이 친구와 같은 사람이 옆에 있을까. 그런 부모인가. 그런 친구가 되고 있는가. 따뜻한 체온마저도 칭찬할 수 있는 그런 섬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어느 드라마에서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그랬다. 8살은 밥 잘 먹는 게 효도하는 거라고. 아무 탈없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그렇게 기특한 것이다. 아니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그렇지 않을까. 뭐하나 특출 나지 않아도 이렇게 하루하루 무탈하게 살아주는 건 대단한 일이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 해서 대단히 못하는 것도 없지 않은가.


따뜻한 시선 하나는 아이를 다시 웃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모든 아이가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당장 내 옆의 아이 손부터 꼭 따뜻하게 잡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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