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음식, 그리고 엄마

: 요리하는 엄마

by 윌버와 샬롯

추억의 음식이라 하면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생각날 수밖에 없다. 여태 살아오면서 수많은 음식을 먹었을 텐데도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가 해준 음식, 그 음식과 함께 연상되는 날, 그리고 그 이미지만 머릿속에 스친다.


엄마가 음식을 잘했고 못했고를 예전에는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다. 어느 날 형제들과 함께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나눴는데, 언니가 툭 말했다.


“우리 엄마가 요리를 잘하지는 못했어. 먹고살기 바빠서 대충 해었지.”


보통 회상하는 엄마표 요리라 함은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정성이 듬뿍 담긴 이미지로 남아있어야 할 텐데, 언니는 다르게 얘기했다.


언니 말을 듣기 전까지는 한 번도 엄마 요리가 맛이 없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었다. 내 곁에 있던 엄마와의 짧은 12년 기억보다 나보다는 더 오래 함께 한 언니 기억이 더 신빙성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억해보면 엄마가 평소에 어떤 거창한 음식을 해줬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가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을 거다.


그래도 가족 누군가의 생일 날에는 아침상에 미역국이 항상 있었고, 어린이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그 시절 아이에게는 최고 반찬이었던 햄이나 소시지, 계란말이를 잊지 않고 해 주셨다. 넓적하게 쓸어낸 무에 양념이 톡톡히 배긴 고등어조림도 맛있었고, 겨울 동안 말린 시래깃국도 기억에 남는다. 날씨가 쌀쌀할 즈음부터는 집안 가득히 그 향이 오래 남을 정도로 청국장도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기침이 심했다. 엄마는 겨우내 그런 나를 위해 연탄난로에 생강차를 줄곧 보글보글 끓이셨다. 그 향 때문인지 질병 같던 어릴 적 기침은 많이 나아졌다. 아직도 기침이라면 생강차만 마도 그만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생겼 정도다.


명절이나 잔치 때는 반죽한 찹쌀가루를 튀겨 조청에 묻힌 동그란 유과를 만들기도 했다. 튀겼을 때 바로 먹은 그 고소함과 달달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엄마는 꼭 어떤 음식이건 간에 빨간색 포장지에 있던 다시다 조미료를 넣었던 것도 생각난다. 건강을 생각한다며 직접 만든 천연조미료를 쓰는 다른 엄마와 다르게 아마도 엄마에게 다시다는 쉽게 맛을 내는 만능 조미료였던 것 같다. 식구가 많은 탓에 종종 한꺼번에 100장의 김을 들기름 두르고 구워 맛소금을 뿌렸다. 난 김을 굽는 엄마 옆에서 '방금 만든 김으로 밥 한 공기 싸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침을 꿀꺽 삼키던 순간도 오른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그중에 내 기억 속 엄마의 시그니처 음식을 하나 꼽자면 양념장을 올린 꼬막이다. 꼬막은 평소에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중요한 손님이 오거나 하는 남다른 날의 반찬이었다. 대학 때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서야 벌교라면 꼬막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엄마가 살던 시절에도 꼬막이 비쌌던 건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자주 안 해준 건지는 모르겠다.


꼬막을 적당히 삶고 한쪽만 껍데기를 벗겨낸다. 갖은 채소를 잘게 썰어 간장과 혼합해 알록달록 짭조름한 양념장을 만든다. 접시에 올린 오동통한 조갯살 위에 양념장을 얹혀 내놓으면 여러 젓가락이 바빠지고 꼬막은 금세 없어지고 마는 반찬이었다. 마음껏 풍족하게 꼬막을 먹었던 기억은 없다. 항상 먹다 만 기분이던 아쉬운 음식이었다.


그 음식이 그리 흔한 반찬은 아니라는 것을 형부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알았다. 아직도 그날이 눈에 선하다. 잔칫날처럼 상다리 휘어지게 상을 차리던 형부가 첫인사 오던 날. 어김없이 엄마는 여러 반찬 중에 꼬막무침도 내었다. 형부 본가에서는 고기를 주 먹는 집이었다는데 꼬막 요리는 그때 처음 먹어봤다는 얘기를 형부에게 한참 후나 들었다. 아마도 나처럼 형부에게도 몇 안 되는 장모의 기억에서 꼬막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는 꼬막 비빔밥이 대유행이었다. 프랜차이즈 이름만 다를 뿐 해산물을 주로 취급하는 식당마다 꼬막 비빔밥 메뉴가 성황이었다. 엄마처럼 반만 까져있는 꼬막은 아니고 조갯살만 발라내어 양념장에 버무려 밥을 비벼 먹는 식이다. 아이한테도 그 비빔밥이 입에 맞을까 싶었는데, 아이는 남은 양념까지 싹싹 긁어모아 맛있게 비벼 먹었다. 엄마가 그런 우리 아이를 볼 수 있었다면 그 옛날 꼬막 반찬을 해줘도 잘 먹겠구나 하는 생각 하지 않았을까.


한 달에 한 번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계모임이 있었던 것 같다. 매번 동네에 있던 중국집에서 모임을 했었던 것 같은데, 그때 엄마는 궁상맞게 왜 그랬을까? 나름의 그 회식에서 엄마는 음식을 먹지 않고 종종 냄비에 싸오곤 했다. 집으로 노란 양은 냄비에 짬뽕을 담아와 내가 면을 먹으면 둘째 오빠는 비위도 좋게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엄마는 그랬었다. 그렇게 자기 것을 챙기지 않았다. 가끔가다 엄마가 생각나면 내 손으로 직접 밥 한 끼 못해주는 것, 그 흔한 외식 한 번 사드릴 수 없는 엄마의 부재가 한탄스럽다. 너무 엄마가 불쌍해서 엄마가 다시 태어나면 내 딸로 태어나라고 마음속으로 빌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요리를 참 잘하신다. 집에서 떡과 빵도 만들고, 도넛도 튀기는 등 나의 어린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홈메이드 수제 음식을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해줬었다. 어머니의 이런 남다른 손맛으로 남편은 어려서부터 평범한 다른 집 음식을 먹는데 서툴렀고, 친구의 도시락 반찬도 먹지 못하는 까다로운 입맛이 돼버렸다. 반면에 난 어디서든 어지간하면 잘 먹는 식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요즘은 남이 해주는 밥이면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 아줌마가 되었다. 엄마에게 요리는 배우지 못했지만, 리 달인 시어머니 덕분에 여전히 서투른 칼질로나마 맛있다며 찬사를 받는 식을 끔은 이에게 주는 엄마 되었다.


음식만으로도 엄마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막상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엄마가 요리를 못했다는 언니 기억을 바꾸고 싶다. 엄마가 요리를 못한 것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엄마 삶이 버거웠을 뿐이다. 엄마도 집에서 살림만 하며 사는 보통의 주부였다면 좀 더 다양한 음식들을 우리에게 내놓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꼬막을 삶을 때는 한 방향으로 저어줘야 한다는 것을 최근 요리하며 알게 됐다. 우리 엄마도 그렇게 꼬막을 삶으셨을까?


오늘 더욱 그리운 엄마에게 절절하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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