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겨주고 싶은 날에 챙겨줄 당사자가 옆에 없다는 것. 그건 내가 어릴 때부터 느꼈던 부재에 대한 한탄이다.
학창 시절에는 다가올 엄마 생신 선물로 뭘 살지 고민하며 재잘거리던 친구들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옆에서 들어야 했다. 오늘같이 꽃집에 지천으로 널린 여러 카네이션을 숱한 날을 그저 눈길로만 스치며 지나갔다.
잊고 있다가도 오늘 같은 날은 강제적으로 자꾸 생각나게 한다.
그러다 터져버렸다. 무심결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엄마'라고 절규하듯 부르는 라디오 속 어느 가수의 노래가 내 가슴을 휘젓는다.
TV에서나 지인에게서나 가까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오늘을 보내는 다양한 그들의 일상을 나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오늘이 난 슬프다. 손맛이 그리 뛰어나진 않아도 적어도 밥 한 끼 정도는 오늘을 위해 차릴 수 있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분위기 있는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드릴 수 있는 여유는 충분히 되는데, 내겐 이제 더 이상 그럴 기회가 없다.
엄마와 시어머니의 생신이 해는 달라도 4월 초로 날짜가 같다. 기막힌 우연이고 대단한 인연이라 생각했다. 처음에 그 사실을 알고 남편과 나는 서로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머니 생신 때마다 엄마를 다시 한번 기릴 수 있겠다고 여기기도 했다. 분명 그 날마다 엄마 생각은 났다. 그러나 왜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은 더 커가는 건지 그 날이 좀 속상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생신 때마다 며느리로서의 도리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다 문득, 그것에 반의 반도 내 손으로 직접 엄마에게는 하지 못한 것에 가슴이 미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미역국을 끓인 적도, 잡채를 만든 적도, 고기를 재운 적도 엄마를 위해서는 해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분명 배려심 많고 며느리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시는 좋으신 분임에도 그녀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에서 난 묘한 감정이 때때로 들었다. 살아계실 때는 누리지 못한 엄마의 그 평범한 행복이 시어머니의 일상과 더욱 대비되어 안타까운 슬픔으로 밀려왔다. 시어머니에게 도리를 다할수록 엄마가 떠올랐다. 이렇게 꽃이 예쁘게 피고 하늘도 맑고 푸르른 눈부신 날에 우리 엄마도 태어났는데...
어버이날을 챙기기 위해 시댁을 지난 주말에 가서 집안일을 도와드렸다. 나름 맛집이라고 소문난 식당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어버이날 당일은 가지 못하니 맛있는 거라도 두 분이서 오붓이 사드시라고 용돈도 따로 챙겨 드렸다. 오늘 낮에는 겸사겸사 안부전화를 드렸다. 거기까지 며느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의 모든 일은 끝냈지만...
엄마. 우리 엄마.
이 모든 좋은 날을 누리지 못하고 떠난 그녀가 너무 그리워서, 그리고 누구라도 거리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그 흔하디 흔한 카네이션 한 송이라도 사서 꼭 가슴에 달아주고 싶었던 예전 그 한 소녀가 오늘은 이 노래로 눈물이 왈칵 났다.
엄마, 라디(Ra. D)
엄마 이름만 불러도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죠 모든 걸 주고 더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당신께 난 무엇을 드려야 할지
엄마 나의 어머니 왜 이렇게 눈물이 나죠 가장 소중한 누구보다 아름다운 당신은 나의 나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