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열이 난다. 코로나면 어쩌지?

: 열 나는 아이

by 윌버와 샬롯

그저께 저녁부터 아이가 심상치 않았다.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미열이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잠을 잘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했다.


잠결에 아이 둘이 주방에서 물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벌써 일어날 시간인가 하고 게슴츠레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3시 30분. 아직 새벽인데 얘들이 왜 일어난 거지?


아이 둘에게서 열이 있었다. 밤새 힘들어 뒤척였었나 보다. 그 저녁에는 미열이었지만 새벽부터는 몸이 꽤 뜨거워졌다. 아이 둘이 같이 그러니 그때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보통 때 같으면 '약 먹이고 아침에 병원 가야지' 할 텐데 번득 '혹시 코로나 아냐?'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잦았다. 병원 가는 게 지긋지긋할 정도로 일상이었다. 그럴 때마다 선배 맘들은 얘기했다. 학교 들어가면 좀 나아질 거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크게 아픈 적이 별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열이 났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하기조차 힘들다. 독감 걸리는 주변 친구들도 흔하게 봤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거뜬했다. 예방주사나 정기검진이 있을 때만 병원에 가는 정도였다.


그러니 명도 아니고 두 아이가 동시에 열이 펄펄 끓고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약통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해열제만 가득했다. 기한이 지나지 않은 것을 겨우 찾아내 아이에게 먹였다. 이 한 알로 이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남편은 수건을 적셔 아이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건 아기 때나 하던 일이었는데. 자기만큼 키가 자란 아이에게 머리가 이제 희끗해지는 아빠가 고열과의 사투를 시작했다.


네 식구가 밤을 꼴딱 새웠다. 아픈 아이는 아픈 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가 열이 내렸는지 수시로 아이 이마를 만지고 수분을 보충해줬다. 한 알의 해열제는 5~6시간 정도 진통의 제 역할만 해내고 그 이후는 다시 열은 올랐다. 어디가 단단히 아픈 게 틀림없었다. 이른 아침에 해열제 한 알을 더 먹였다.


잠도 설치고 아이들이 열이 계속 나니 혹시나 하고 남편은 출근을 포기했다. 이번 주는 아이들이 원격 수업하는 주간이었다. 약 기운으로 열은 내린 상태여서 온라인 수업은 들을 수 있었다. 입맛이 없다 하니 아침 점심은 간단히 먹었다. 평일인데도 출근 안 한 남편까지 네 명이서 한 집에 모두 있으니 주말 같기도 했다.


수업은 겨우겨우 들었지만 아이들은 약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열이 났다. 열만 날뿐 다른 증상이 없어 병원에 가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기인지 코로나인지 그 명확한 경계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혹시나 코로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이 니 별의별 궁금증과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미성년자가 확진이 되면 보호자가 같이 가서 아이를 케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이 혼자 보내지는 건가? 가족 모두 확진자가 되면 같은 곳에서 격리될 수 있을까? 각각 따로 떨어지게 될까? 병원으로 이송되면 짐은 뭘 챙겨야 할까? 오늘 마트에서 배송된 식료품은 당분간 먹을 수가 없으니 냉동실에 넣어놔야겠지. 어제 책모임으로 사람들 만났을 때 차 마실 때는 마스크 벗고 얘기했는데 전염시켰으면 어쩌지.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우리 집 얘기가 금세 동네에 소문나겠지. 다음 주에 있을 글쓰기 모임과 들어야 할 강의는 못 가겠네. 다음 주만 빠지게 될까? 그다음 주는? 다음 주말에는 친정식구들랑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는데 못 가겠네. 치료가 되더라도 후유증이 남는다는데 아직 어린 우리 애들 계속 아프면 어떡하지. 휴우. 남편은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은 미리 걱정하지 말자 했다.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맞는 말이다.


아이들 온라인 수업이 끝나고 바로 선별 진료소를 가족 네 명 모두 갔다. 아이들만 열이 있지만 함께 밥 먹고 부대끼며 사는데 부모라고 예외일 수 없으니 실하게 모두 같이 검사받기로 했다. 내가 이걸 할 줄이야.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불안을 끝내기 위해선 확인밖에 없으니 내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딸아이는 집에서부터 검사가 얼마나 아픈지 계속 물어봤다. 나도 얘기만 들어봤지 처음이었고 아이처럼 무서웠다. 그래도 잠깐 몇 초면 되니까 참아보자 아이를 다독였다. 네 명은 그렇게 선별 진료소 하얀 천막 안에서 나란히 줄을 섰다. 아빠, 아들, 딸, 엄마. 총대는 이미 검사 경험이 두 번이나 있던 아빠가 먼저, 엄마는 마무리.


선별 진료소는 다행히 붐비지 않았다. 내 뒤에는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임산부가 혼자 와 있었다. 어쩌다 검사받으러 온 걸까? 내 처지보다 그녀가 더 걱정됐다. 어린아이를 안고 온 부부도 보인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엄숙하게 줄을 서며 순서를 기다렸다.


두 번의 음성 판정 유경험자 아빠는 선두에서 아이들에게 검사의 과정을 익숙한 듯 인솔했다. 회사 근처에서는 코와 혀 두 군데를 봤는데 여기서는 코만 하는 것 같다고, 그리고 거기보단 좀 더 오래 검사하는 것 같다고 서로 다른 점을 설파했다.


검사의 첫 느낌은 짧았지만 정말 짜릿했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걱정됐다. 그들의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어서 이 기나긴 전쟁이 끝나야 할 텐데.


결과는 다음 날 아침에 나올 터였지만 검사를 마치니 웬걸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시험을 마친 수험생 느낌이랄까. 점수가 어떻게 나오든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결과만을 기다리면 됐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자발적 자가격리만이 할 일이었다.



집에 와서도 아이들은 계속 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약국에서 새로 산 종합감기약과 해열제를 번갈아 먹였다. 검사 결과가 양성이면 그에 맞는 치료절차를 받을 것이고, 음성이면 바로 소아과로 달려가 제대로 약을 처방받을 생각이었다.


검사를 받고 돌아와 아이들은 깊은 잠에 빠졌다. 남편도 거실 소파에서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잠이 보약이긴 한가 보다. 일어난 아들은 얼추 열이 잡힌 것 같았다. 몸이 꽤 가뿐해졌다고 한다. 열이 잡히는 걸 보니 코로나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감기였던 거야. 그런데 딸은 여전히 열이 내리지 않았다. 자기는 코로나일 거라고 딸은 자꾸 같은 말을 내뱉었다. 엄마는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 했다.


아프다는 핑계로 종일 뒹굴뒹굴했다. 스마트폰, TV 시청으로 시간을 보냈다. 자기 전에는 또 둘 다 약간씩 열이 올라 약을 먹이고 제시간에 재웠다. 다음 날 아침이면 모두 해결될 것만 같았다. 부디 음성이길 바라며 세찬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정말 푹 잤다. 뒤척이던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밤새 아이를 살피던 날과 달리 내리 아침까지 자버렸다. 6시가 좀 넘었나. 일어나자마자 아이들 방으로 가 이마부터 짚어봤다. 뜨겁지 않다. 전날 자기 전에 먹은 약이 마지막이니 아침까지 열이 오르지 않은 걸 보니 아이들은 회복되는 것 같았다. 코로나는 아니다! 아직 그 시간까지는 코로나 검사에 대한 결과 문자는 받진 못했지만 우리 모두 음성일 거라 직감했다.


보건소에서 온 안내문자


8시 50분에 보건소에서 카톡이 왔다. 공적인 업무임에도 9시 이전에 문자를 보내주는 그 노고에 정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예상은 했지만 가족 모두 음성이라는 문자는 전날 가졌던 불안과 공포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했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에게도 문자를 보여주며 얼싸안았다.

우리 음성이래!


근데 아이들 얼굴에는 약간 아쉬운 표정이 내비쳤다. 전날은 금지된 것들이 무장해제됐었는데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은 뻔한 그림이 그들에게 순간 그려졌으리라. 손도 안된 밀린 숙제, 가야 할 학원, 씻지 않은 초췌한 몰골. 이제부터 해쳐가야 할 코 앞에 닥친 일상으로의 복귀, 자기들의 현실이 보인 것이다.


아이들은 평소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입맛을 어느 정도 찾았다. 기운 없어 보이던 얼굴도 이제는 서로 농담도 하며 생기가 돌아오고 있다.


내일은 계획대로 아이들은 자기들 책모임에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달 호스트인 친구 엄마가 나도 같이 초대했다. 최근 새 아파트로 이사한 집이니 잘 단장한 집을 구경할 수도 있겠다. 나의 다음 주 일정에도 차질이 없을 것이고 그 사이 또 특별한 일만 없다면 친정식구들을 정말 오랜만에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작년 봄, 새 학기 개학이 미뤄지며 체감하던 코로나 일상은 잠시 잠깐 지나가는 일이라 그때는 여겼지만 우리는 일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아직 그 이전의 삶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했다. 들쭉날쭉한 확진자 수에 내 기분도 그동안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저 감사하다. 아이들의 회복에 그리고 우리들의 안전에 모두 감사하다.



기침 한 번, 37도 이상의 열. 코로나 이전의 삶에서는 그것들이 이렇게까지 공포스럽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지인 단톡에서 메시지가 뜬다. 고3인 딸 학교에서 선생님이 확진되어 딸도 검사하고 왔는데 다행히 음성 나왔다고. 다른 이가 답한다. 같은 학교 2학년 다니는 자기 딸도 오늘 검사받으러 갔다고. 자기는 혹시나 걱정되어 마스크도 못 벗고 근무지에서 점심도 안 먹고 있다고.


일상으로의 회복. 머나먼 신기루 같은 날을 우리는 언제쯤 기대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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