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 이웃

by 윌버와 샬롯

2년 전까지 살던 아파트 동에서는 10년 넘게 살았다. 복도형이라 한 층에 8가구가 산다. 나는 비상계단 있는 쪽에서 두 번째 쪽 집에 살았다. 비슷한 시기에 이사를 온 끝집 쪽 옆집은 부부와 자매를 두고 있는 가정이었다. 사는 동안 같은 동 이웃으로는 가장 가깝게 지내기는 했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인사를 하거나, 가끔 주말농장 푸성귀, 시댁에서 보내주신 농산물을 나누는 정도의 친분을 유지했다.


그러나 한참 어린 두 아이를 전전긍긍 혼자 키우던 때라 이웃과 집을 오가며 차를 마실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초기에 친분을 쌓는 그런 시기를 놓치니 그 이후도 그런 기회가 오지도, 일부러 만들지도 못했다. 같은 층에 사는 다른 이웃과도 인사는 서로 잘해서 어느 때에는 책도 물려주시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서로의 자녀가 비슷한 또래나 같은 학년이었다면 좀 더 깊은 친분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학시절에는 결혼한 언니가 사는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서 살았었다. 봄이 되면 짙은 핑크색 철쭉이 만발했던 저층 아파트 단지였다. 그 시절은 조카들도 어린 때였다. 대학생인 내가 보던 언니의 이웃관계는 로망 자체였다. 같은 동에 살던 이웃 주부들은 서로 언니 동생 하며 막역하게 지냈다. 서로의 아이가 같은 초등학교에 비슷한 또래였고 언니는 그녀들과 에어로빅 같은 운동도 하며 즐거운 일상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언니는 그렇게 이웃과 교류하고 아이를 더불어 키우며 지냈다.



언니의 유쾌한 성격으로 사람을 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던 것도 당연히 한몫했을 거다. 이제는 20년도 더 된 언니와 그녀들의 관계는 아이와는 상관없이, 사는 곳도 제각각이지만 정기적으로 만남을 유지하며 종종 여행도 다닌다. 최근에는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중 한 엄마가 여행 계획을 철저히 짜서 구경도 잘하고 맛있는 것도 잘 먹었다며 언니는 스마트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줬다. 그 시절 젊디 젊었던 언니네 동 아주머니들이 나도 어렴풋이 기억나고 어떻게들 변했고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그 집 애들은 뭐 하는지 가끔 언니한테 묻기도 한다. 다 커서 만난 동네 친구도 이렇게 평생 갈 수 있구나 하는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저층 동으로 이사 오면 나도 언니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솔직히 엄청 기대했다. 이전 집에서는 하지 못한 이웃과의 정을 이번 집에서는 처음부터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도 먹었다.


지금 사는 동은 한 층에 마주 보며 두 집이 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이다. 단출하니 이웃을 사귀기에 딱이다 싶었다. 그러나 복병이 있었으니,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 사람 만나기 힘든 구조였는지 그전에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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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는 알고 봤더니 이웃을 만나게 하는 훌륭한 만남의 장소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같이 타면서 처음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해도 자주 마주치다 보면 눈인사라도 하게 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 있는 것이 어색하긴 해도 운이 좋아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짧은 대화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 없는 이 저층 동은 마치 섬과 같다. 무엇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사람들은 곧바로 계단을 올라 번호 키를 누르고 자기 집으로 곧장 들어간다. 마주치려야 마주칠 수가 없다. 어쩌다가 어색하게 계단을 앞뒤로 누구와 동행하게 되더라도 이 사람이 여기 주민인지 그냥 방문한 사람인지 확신하기도 어렵다.



​이사 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앞집은 성인 남매가 자취하는 듯 보였다. 누나는 직장을 다니거나 남동생은 복학생이라 추측된다. 잘 마주치지도 못해 2년이 지났는데도 인사도 제대로 못해봤다. 남편은 영 사람을 볼 수 없으니 앞집에 사람이 안 사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앞집이 이사 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지난주는 화장실과 싱크대 공사를 했다. 누가 새로 이사 오는 것인지 기대했는데 도통 상황 파악이 안 된다.


바로 아랫집에 사시는 할머니는 우리가 이사 온 첫날, 텔레비전 설치하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올라오셔서 심장이 덜컹했다. 십 년 넘게 산 이전 집에서는 한 번도 그런 방문을 받은 적이 없었다. 층간 소음이라는 이슈가 남의 집 얘기인 줄로만 알고 나는 복이 많다 생각했었다. 아랫집 할머니의 방문 이후 난 더욱 아이들 발걸음을 단속한다. 그나마 일 년에 한 번 정도 올라오시는 것 같으니 그만하길 다행이다 생각해야 하는지.




가구수가 적은 동에 살면 더욱 이웃과 친해질 수 있을 거라는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쩌면 시작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아랫집에는 을의 자세로 빵이라도 사가서 인사를 했지만, 처음 이사 올 때 앞집 초인종을 누르고 떡이라도 돌리지 않은 것이 아쉽다. 언니가 누리는 이웃과의 편안한 관계가 단지 운이 좋아 저절로 된 것은 아니리라. 관심을 갖고 포용과 베푸는 품이 들었을 것이다.


오고 가다 계단에서 이미 드문 마주침에도 나름 용기를 내어 먼저 인사를 하고 있긴 하다. 상대방 반응은 여전히 '당신 누구요?' 낯설다 말하지만 말이다. 만약 앞집에 새로운 이웃이 온다면 난 다시 시작하고 싶다. 앞집 초인종을 꼭 누르고 인사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이웃은 과연 내 초인종을 반가워할까? 괜스레 오지랖 많은 이웃이 되는 건 아닐지. 에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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