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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늄, 너 일 좀 하자!

: 오소리네 집 꽃밭

by 윌버와 샬롯

작년 봄에 지인 한 분이 제라늄 화분 하나를 나눔 해주셨다. 꽃 중에 제라늄을 특별히 좋아해 아파트 베란다가 제라늄으로 가득하게 키우는 분이다. 한꺼번에 제라늄 꽃이 만개했을 때는 그 집 베란다는 어느 멋진 화원이 따로 없을 정도로 정말 장관이다. 지인은 그런 즐거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어 그중에 하나를 내게 분양해 준 것이리라.


나도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좀 무심한 정원사다. 화분에 물을 주고 적당한 햇빛과 바람을 줄 뿐이다. 어떤 특별한 노력을 더 해야 하는 건지 우리 집 화초들은 꽃이 잘 피지 않는 편이다. 분명 꽃이 피는 종임에도 죄다 초록 이파리만 무성하다. 비슷한 시기에 분양을 한 것인데도 우리 집으로 온 제라늄은 두 송이 분홍 꽃을 한 번만 보여주고는 여태 감감무소식이다. 원래가 그때 한 번만 꽃이 피고 끝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주신 분 집에서는 꽃이 몇 번이고 피고 지었다 하니 환경의 영향임을 알 됐다. 우리 집 제라늄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여기 그림책에서는 우리 집과 달리 꽃이 만발이다. 그림책 주인공 오소리 아줌마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읍내까지 날아가게 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쁜 꽃밭을 발견하게 된다.


회오리바람이 불던 날이었어요.
이런 날, 잿골 오소리 아줌마는 양지볕에서 꼬박꼬박 졸다가 불어 오는 회오리바람에 데굴데굴 날려 갔어요.
어머나, 예뻐라.


오소리 아줌마는 단박에 꽃밭에 반한다. 집에 가서 그런 꽃밭을 만들겠노라고 다짐까지 한다. 집에 와 남편을 졸라 꽃밭을 만들러 밭을 일구려 하지만 알고 보니 오소리네 주변은 이미 꽃천지 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 집 둘레엔 일부러 꽃밭 같은 것을 만들지 않아도 이렇게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구려.


가까이에 있던 꽃밭을 오소리 아줌마는 이전엔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러지 않던가. 등잔 밑이 어둡거나,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 <보물>에도 비슷한 설정이 있다. 노인은 보물을 찾아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 떠나지만 결국 보물은 바로 자기 집 아궁이에 있었다.


가까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할 때도 있다.


인간은 어리석기에 그림책 <보물>에서처럼 멀리 떠나야 비로소 가까이 있는 것 보이더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종종 듣게 된다. 오소리 아줌마는 그래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40리나 멀리 날아갔었나 보다. 오소리 아줌마의 때가 된 것이다. 옆에 있던 자기만의 아름다운 꽃밭 이제는 알아봐야 할 바로 그 때!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 혼자 힘만의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 옆에서 영감을 불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금상첨화, 여기 오소리 아저씨가 딱 그렇다. 아내의 생뚱맞은 부탁에도 묵묵히 옆에서 거들어주니 아내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갑자기 뭔 소리냐며 타박이라도 줬다면 아줌마는 집 둘레 꽃밭을 알아보기나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아줌마 혼자서도 밭을 일굴 수는 있었을 테지만 남편과 함께 발견하는 기쁨은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의 마음을 이심전심 알아주니 오소리 아저씨는 훌륭한 남편임에 틀림없다. 어깨를 두르고 나란히 저녁노을을 지켜보는 오소리 부부의 뒷모습이 그래서 더 다정해 보인다.


그림책에서 오소리 아줌마는 8종의 꽃을 만난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 그림책으로 난 패랭이꽃이 뭔지, 용담꽃이 어떻게 생긴 건지 알게 됐다. 그림만으로는 아쉬워 실제 꽃은 어떤지 사진으로도 몇 번 찾아보기도 했다. 식물을 좋아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하지 못한다. 자주 보지 못하는 꽃은 이름을 매번 까먹는다. 그래서 오늘도 난 꽃 사진을 다시 찾아보고 그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봤다.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
나리꽃, 패랭이꽃, 잔대꽃
용담꽃
도라지꽃


언젠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식물은 생존을 위해 온 힘을 내 꽃을 피우는 거라고. 나 좀 봐달라며 살아 내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거라고. 그렇다면 우리 집 식물은 꽃을 피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필요한 것을 알아서 주는 주인한테 굳이 꽃을 애써 보여주는 아양까지 부리지 않아도 우리 집이 살만한 환경이라는 반증인 걸까? 나보다 식물에 정성이 덜해 보이는 다른 집에서마저 꽃이 참 잘 피는 걸 보면 아예 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낮의 길이와 온도의 영향이라는데 분명 우리 집에 어떤 결핍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꽃을 못 보는 아쉬움을 편하게 위로했다. '그래, 우리 집 애들은 애쓰지 않아도 될 만큼 그냥 편안한 거야. 잘 크면 됐지 뭐, 꽃이 무슨 대수라고.'


지인은 가끔 내게 묻는다. 꽃은 잘 피냐고. 멋쩍어서 난 잘 있노라고 에둘러 대답한다. 좀 더 따듯해지고 바람을 더 쐬어주면 그때서야 기지개를 켜고 꽃 좀 보여주려나. 그래도 이제는 정말 봄이 왔는데 너무한 거 아닌가. 여태까지는 날씨가 추워서 그랬다 해도 이제는 좀 식물 본연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 집 제라늄은 너무나도 직무 유기중인 것이다. 나도 오소리 아저씨처럼 느긋한 표정으로 흐뭇하게 나만의 꽃밭을 바라보고 싶다. 그렇게 툴툴 볼멘소리나 하며 속절없이 꽃망울을 여전히 기다리는 중이다. 집 앞 목련꽃은 벌써 지고 있고 벚꽃도 이제 시작인데.


제라늄, 너 이제는 일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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