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에서 주관하는 강연을 들었다. 강사는 교육방송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아주대 소아정신과 조선미 교수다. 강연 제목은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인데, 출판사가 지은 자신의 책 제목이라 설명했다. 강연 제목과 별개로 실제 강연 내용은 행복에 대해서였다.
무척 소탈하게 본인 경험담을 예로 들어가면서 재미있게 강의하시는데, 멘털이 강하고 유머러스한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연 핵심은 ‘당신은 얼마나 자주 깔깔 웃는가’가 아닌가 싶다.
행복의 기준을 좌절 내구력이 얼마나 강한가에서 판단할 수 있다 한다. 사람이 살면서 부정적인 감정이나 실패를 평생 겪지 않을 수는 없다.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고 견디는 방식이 사람마다 각각 다를 뿐이다.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버티느냐가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photo by Tim Gouw / unspash
밖에서는 세상에 없을 좋은 사람처럼 웃고 있다가 아이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면 엄숙하고 깐깐하며 더 나아가 비장미까지 느끼게 하는 엄마가 많다고 한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와의 전투를 시작하듯 말이다. 그 말에 청중 속 엄마는 '맞아 맞아'하며 모두 공감한다.
하루에 몇 번이나 아니 일주일에 몇 번이나 나는 아이와 까르르 웃었을까. 쉽게 화내고 잔소리와 지적하는 모습이 일상이 아닐까 싶다.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만 아이와 함께 웃는 것 같다. 더군다나 같이 웃는다는 것도 TV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인 것 같다.
아이는 ‘잘’ 키우는 게 아니라, '그냥' 키우면 된다 한다. 만 5세 이후부터의 부모 노릇은 그저 아이의 배경으로만 존재해주면 된다 말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는 엄마가 있고, 적당히 돌봐주면 되며, 엄마가 즐거우면 된다.
알고 보면 참 쉬운 조건이다. 강연을 같이 듣던 엄마는 두 번째 요건까지 듣고 “우리 잘하고 있는 거네.”하며 속닥인다. 마지막 조건, 즉 자주 즐겁기만 한다면 나도 아이를 키우는 조건 모두에 해당되겠다.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육아를 하지는 않겠다고 항상 생각해왔는데 어느 순간 나도 아침 드라마 속 엄마처럼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는 푸념을 할 때가 있다.
노력한 만큼 피드백이 안 나오는 육아에 조금은 지친 듯도 하다. 원래도 아이한테 맹목적으로 뒷바라지해주는 엄마는 아니지만 이제부터라도 아이에 대한 관심보다 스스로에게 더 집중하려고 한다. 글쓰기도 그 방편 중 하나로 시작했다.
“엄마는 아무 때나 글을 쓸 수 있어서 좋겠다. 난 할 일이 많아서 그럴 시간이 없어.”
“그럼 네가 좀 일찍 일어나든가.”
노트북 앞에서 무언가를 계속 쓰고 있는 나를 보며 아들이 볼멘소리를 하며 부러워한다. 글을 쓰며 맛보는 엄마의 이 작은 행복이 아이에게도 전염될 수 있을까.
계속 아들이 엄마를 부러워하게 해야겠다. 다음은 없다. 지금 당장 글을 쓰고 나부터 깔깔 웃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