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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밥처럼 씹어먹고

: 이생진

by 윌버와 샬롯

한 일간지 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김형석의 100세 일기’를 챙겨 읽는 편이다. 이 칼럼은 100세 노 교수의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 내려간 삶의 얘기이다. 특별한 일은 없지만 소소한 일상의 글에서는 가끔 소년의 마음과 같은 그분의 순수함을 느낀다. 어느 날 지난 신문을 보다 구순 나이에 시집을 낸 이생진 시인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요? 천만에! 이제는 인생이 길어야 예술도 길어져요. 90세까지 시를 쓸 수 있는 비결은 건강입니다. 삼시 세끼 제 손으로 챙겨 먹고 설거지까지 해요. 남한테 의존하면 죽음이 점점 가까이 오는 법이지요."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야 하는가는 스스로에게 늘 하는 질문이다. 나도 저런 모습으로 늙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한 분은 최근에 돌아가신 사돈 어르신이다. 공무원 생활을 은퇴하시고 백수 가까이 사실 때까지 책과 신문 읽기, 그리고 글쓰기를 놓지 않으셨다. 팔순 때 내신 자서전을 읽고 그 고매함에 더욱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김형석 교수, 이생진 시인, 사돈 어르신,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떠올려보니 이리 닮을 수 있을까 하고 깜짝 놀랐다. 헤어스타일, 안경 쓰신 모습, 그리고 그 인자한 인상이 서로 빼닮았다. 어찌 그들에게도 인생의 풍파가 없었겠으랴. 그러나 삶에 임하는 긍정적인 모습과 태도는 그들을 서로 닮게 했나 보다. 더욱이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오래도록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는 것!


하루 동안 남긴 짧은 메모들을 모아 매일 저녁 쓰는 글이 내 존재를 말해준다.


구순이 되어서도 내 존재를 말하고 싶다는 시인, 그렇지. 나도 내 존재를 드러내고 말하고 싶어 글을 쓰고 싶나 보다. 오늘도 어줍지 않은 글을 이렇게 끄적여 본다. 아직 미흡하지만 쓰다 보면 나아지겠지. 처음부터 어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100세까지 써야 하니 그리 급할 것도 없다. 고독을 밥처럼 씹어먹고 천천히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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