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2시 01분 - 이제 자려고’ ‘오전 7시 40분 - 엄마, 이제 점심 먹고 있어’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문자가 와있다.
12시 넘어서까지 놀다가 그제야 잤구나.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네. 그걸 또 점심이라고 잘못 보내니.
photo by chuttersnap / unsplash
딸이 난생처음으로 부모 없이 가는 여행을 갔다. 친구들이랑 같이 듣는 역사 수업에서 1박 2일 경주 여행을 간 것이다. 새 학기 시작할 때쯤 선생님은 한 학기 동안 진행할 견학 프로그램을 공지했다. 반일, 종일, 1박 2일과 같이 견학 장소에 따라 한 달의 한 번 정도 견학을 선택해서 갈 수 있다. 딸은 이미 가본 곳이거나 잠을 자고 와야 하는 곳은 모두 신청하지 않았다. 애가 탔다.
친구랑 더 좋은 시간을 만들어봐.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그러나 요지부동이다.
어렸을 적부터 딸은 새로운 장소나 낯선 사람과의 적응에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다.
수줍어서 그래요.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나아져요.
아직 어리니까 크면서 나아지겠죠.
아이를 위한 변명으로 어렸을 적부터 타인에게 이런 말을 수없이 한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저학년 때까지만도 학년이 올라가면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3학년 이후부터는 딸의 소극적인 모습과 그 태도가 이제는 고착화되는 것이 아닌지 무척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새 학년 3월마다 친구를 미처 못 사귀고 또 혼자가 될까 노심초사이고, 학부모 상담 때 담임선생님의 걱정스러운 말을 듣고 오면 며칠 동안 계속 우울한 상태로 지내게 된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내향성을 바꾸려 하지 말고 아이의 섬세함을 지켜주라는 여러 전문가 말을 난 여태 방패 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지는 않았나?
전문적인 치료를 시작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으로 밤잠을 설친 날도 여러 날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정말 아직도 어떻게 해야 이 아이가 학교에서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좀 거친 세상으로 내보내 봐요. 이제는 좀 부딪히며 시도를 하게 해 줘야지.”
같은 학년 친구 엄마가 내게 조언한다. 그때 알았다. 잘 모르고 하는 섣부른 충고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당신이 내가 한 노력을 알아? 당신이 뭐라고 나한테 그런 충고를 해?
겉으론 못내 긍정하지만 속으로는 마구 욕을 해댄다.
경주는 가족여행으로 2년 전에 갔다 온 곳이긴 하다. 처음에는 이 체험 여행을 아이가 원하지 않아 신청하지 않았지만 수업을 같이 듣는 팀 친구 모두 신청해서 이번 한 번만 가보자고 구슬려 보았다. 딸은 마지못해 승낙했고 그렇게 어제 아침에 떠났다.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선생님은 카톡으로 다량의 사진을 보내준다. 사진 속 그 많은 아이들 중에 난 딸을 찾으며 표정을 살핀다.
지금 재미있는 거니?
행복한 거니?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는 건 아니지?
지난 저녁에 올라온 안압지 단체사진에서 사진 중앙에 딸은 친구와 팔짱 끼고 활짝 웃고 있다. 그 사진을 보고 나서야 조금은 안심하고 잠을 청했다.
엄마, 너무 재미있었어.
친구들이랑 같이 자도 괜찮았어.
다음에 또 가고 싶어.
오늘 저녁에 돌아오는 딸에게 이런 말을 듣고 싶다.
우리 공주, 밤새 편안하게 잠을 잤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든 것이 궁금해. 한 발짝 나아가자. 넌 자체만으로도 너무 빛나는 아이야. 너를 조금만이라도 내보여줬으면 좋겠어. 엄만 네가 너무 아까워. 수줍다고 낯설다고 감춰지는 너의 모든 것이 아까워.
아이를 위한 부모로서 생기는 수없는 선택과 결정들, 이 고뇌의 끝은 내가 엄마가 된 이상 결코 올 것 같지 않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잠든 아이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는 밤도 많았지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래도 나중에 먼 훗날 아이에게 보고 싶고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는 것이다.
딸, 지금 석굴암은 어떠니? 엄마 아빠랑 줄 서서 보던 것도 기억나니? 다보탑도 예전 그대로야? 집에 돌아와서 너의 즐거운 재잘거림이 기다려진다. 엄마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게. 사랑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