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테스트가 도대체 뭐길래

: 자녀

by 윌버와 샬롯

학기기 끝날 때쯤이면 가까운 지인들이 아이를 데리고 영어 학원으로 간다. 아이의 영어 레벨 테스트를 받기 위해서다. 집에서 엄마와 영어 공부를 했거나 소규모 영어 학원을 다녔던 아이 엄마들이 새 학기를 앞두고 아이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학원으로 나서는 것이다. 지금의 학원을 계속 다녀야 할지 다른 곳으로 갈아타야 할지 엄마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 집 아이들도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일 텐데 작년부터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여태 집에서 엄마가 이끌어주던 공부가 헛수고였다는 것을 혹시나 증명해주는 성적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건 마치 내 신념이 잘못되었다고 꾸짖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도 별 수 없는 엄마인지 주변 아이의 점점 늘어나는 화려한 스펙에 가끔 마음속 비교를 하고 있기도 했다. 시류에 따라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신념도 아이가 커갈수록 물음표가 생기기도 했다. 나름 그런 쪽에 일부러 눈귀를 닫고 산다고 했는데 이제는 너무 닫고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으니 어처구니없.


고민만 하지 말고 우선 부딪혀보자 하는 생각으로 테스트에 가장 공신력 있다는 학원에 예약을 했다. 이미 지인이 아이와 겪어 온 후일담을 들었기에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큰 규모 학원을 처음 가본 아이들 표정이 심상치 않다. 스스럼없이 원어민과 장난을 치는 또래 아이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괜한 걸 해서 아이 기나 죽이는 건 아닌지 고민도 됐지만 다른 세상을 보여줘 동기부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1차 목표로 삼았다.


아이들 이름이 불리고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왜 그렇게 짠한지 모르겠다. 당황하지 말라고 대충 어떤 식으로 시험이 진행될지 말은 해줬지만 아이가 맞이하게 될 상황이 나마저도 아득했다. 지인은 미리 듣기 평가 문제집이라도 사서 연습 좀 하고 가보라는 팁을 알려주긴 했지만 그저 순수한 평소 실력을 알고 싶어 어떤 준비도 없이 임했다.



테스트 시간이 두 시간 가까이 되어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책이라도 읽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당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슨 대학 시험 보는 것도 아닌데 처음 느끼는 이 기분은 무엇인지. 이게 뭐라고 그저 레벨 테스트일 뿐인데 엄마가 시험장 밖에서 떨고 있다니. 연신 애꿎은 커피만 홀짝거리고 그것도 모자라 냉수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다.


학원 쉬는 시간인지 왁자하게 강의실에서 우르르 아이들이 나온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떤 아이는 선생님과 심각하게 대화중이다. 3시간 동안 이곳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 표정을 살폈다. 이 학원에 우리 아이를 벌써부터 보낼 생각은 아직 없지만 과연 보낸다 해도 이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테스트를 마치고 나오는 아이가 눈은 크게 뜨고 얼굴은 벌게져서 시험장을 나오더라는 지인 말이 떠올랐다. 생전 처음 겪는 체험이라 분명 우리 아이 모습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강의실이 더웠는지 역시나 얼굴은 모두 벌게져서 아이들이 나왔다. 딸은 화난 건지 어떤지 모를 무표정한 표정으로, 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게 온다. “그냥 어떤 건지 경험해 보는 거야. 수고했어.”라고 말은 했지만 아이들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아 결과가 또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초연한 척했지만 사실 나는 경쟁에서 이긴 딸을 욕심내고 있었던 것이다.’



딱 내 속내도 이 느낌이 아니었을까. 한참 지난 신문을 뒤적이다 칼럼의 이 구절이 내 마음을 관통하고 있다. 칼럼을 쓴 작가는 여태 어떤 경쟁에도 가담하지 않고 있던 딸이 처음으로 피아노 대회에 나갔는데 실전에서 실수를 연발했더란다. ‘실수하면 뭐 어때’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밥도 안 먹히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했다. 이상하게도 잠자리에 누워서야 눈물이 터졌다고. 작가의 그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테스트 결과를 듣고 아이들에게 보이는 내 얼굴은 포커페이스였다. 남매가 서로 비교될까 아이들에겐 결과를 공개하지 못하고 그 정도면 모두 잘한 거라고 얘기만 했다.


그날 아이들이 잠이 들고 나서야 남편과 앞으로의 아이들 공부 계획을 조용히 의논했다. 터놓고 얘기하니 답답함이 조금 가시는 것도 같았다. 마치 부부는 서로 독립군 동지가 된 것처럼 절체절명의 미션을 수행하듯 말이다. 이렇게 부부가 한마음 한뜻으로 의견 일치를 볼 때가 과연 언제였던가. 한동안은 자식 교육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부부가 머리 맞대고 함께 고심할 듯싶다.

keyword
이전 04화우리 공주, 잘 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