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자다가 영원히 잠들겠지
1.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선생님, 조퇴할 수 있을까요.”
몸에 이상이 온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맘때쯤 내 하루 일과는 정말 단순했다. 아침에 눈을 떠 등교하고 수업시간 내내 졸다 다시 하교하고 잠드는 나날. 마지막 중학교 일 년은 그렇게 주욱 잠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다 간지러운 느낌에 얼굴을 긁으며 잠에서 깼다. 거울을 보니 볼 부분에 긁은 자국 말고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수업으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 간지러움에 담임 선생님께 조퇴를 허락받는 중이었다.
“오늘 단축수업이라 마지막 1교시만 끝나면 되는데 버틸 순 없겠니.”
선뜻 자신의 손수건에 찬물을 적셔 내미는 선생님의 성의에 별수 없이 교실로 돌아와 마지막 수업을 버텼다.
"넷째야."
언니의 목소리가 잠을 깨웠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늦게 들어온 고등학생 둘째, 셋째 언니였다.
나는 다섯 남매 중 넷째인데 어렸을 적부터 맞벌이한 부모님 대신 서로를 챙기느라 서로 살가웠다. (딸 넷에 아들 하나라 그 얘기를 들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아들을 낳느라고 다섯 명을 낳았구나 한다.) 하교하자마자 장난기 젖은 목소리로 이불을 들춘 언니들은 별안간 표정이 바뀌며 소리를 쳤다.
"너 얼굴이 왜 이래!"
놀란 얼굴을 바라보니 덜컥 겁이 났다. 학교가 마치고 괜찮아진 증상에 병원을 안 간 것이 문제가 되었을까. 얼굴을 잡혀 이리저리 살펴지는 동안에 이유를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언니는 곧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엄마, 넷째 얼굴이 이상한데 병원에.."
정신 차릴 새도 없이 그녀들의 손에 이끌려 응급실에 도착했다.
“38.7도입니다. 언제부터 열이 나셨죠?”
분주히 오고 가는 의사와 간호사들, 걱정 어린 얼굴의 가족들 사이로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몰라요.”
“열나는 거 모르셨어요?”
“몰랐어요.”
“그럼 얼굴은 언제부터 이러셨어요?”
“오늘 낮부터 간지러웠었는데 얼굴에 뭐가 난 건 가요?”
간호사는 대답 대신 거울을 보여줬다. 벌게진 얼굴과 피부를 가득 채운 수포들. 내 모습이 이렇게 징그러울 리 없었다.
“한 시간 전쯤에 동생이 자고 있길래 깨웠더니 얼굴이 이랬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나 대신 언니가 대답했다.
“몸에도 그러네요. 일단 열 때문에 수포가 올라왔을 수 있어요. 주사 먼저 놔드릴게요.”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징그럽게 채워진 수포들.
이후에도 질문과 함께 응급실 안이 분주해졌다. 삼삼오오 모인 의사들은 컴퓨터와 자료를 동원해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동네에서 그나마 크다는 종합병원에서도 병명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저 감기로만 생각한 엄마는 허둥대던 응급실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의사들의 권유에도 날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그렇게 학교에 조퇴를 내고 집에서 지내기를 며칠.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찾아온 이모와 함께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끊임없이 응급환자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그곳에서 그저 다른 세상의 일을 보듯 의아해했다.
‘난 왜 여기 있지. 그냥 감기가 아닌가.’
아무 아픔도,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 여기 누워있어야 하는지, 아픔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데 계속해서 몸엔 바늘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많은 몸의 핏줄에서 하필 사타구니에서 피를 뽑는 이유도, 침대에 가만히 누워 검사실에 끌려다니는 이유도 모른 채 천장만 바라봤다.
"아유 불쌍한 것.."
이모가 내 이마를 쓸어 넘기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슬펐다. 정말 내가 불쌍하고 손목에 꽂힌 링거줄도, 자리도 없어 화장실 앞 간이침대에 누워있는 신세도 다 슬펐다. 응급실이란 곳이 그런 마음을 만들어 내는 걸까. 알 수 없는 채로 그 밤을 보냈다. 사실 그때에 어떻게 밤을 지새웠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게 그때의 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