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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느 역에 멈춰 있을까.

프라이머리 - 3호선 매봉역

by 훈자까 Feb 26. 2025

 이 곡을 재생하는 순간, 입장하는 지하철의 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아, 여기는 매봉역이구나. 하는 현실감에 젖게 한다. 매봉역은 가사를 쓴 이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겠지.


 처음 알게 된 때는 아마 대학교 신입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프라이머리의 곡이라고는 유명한 몇 가지밖에 몰랐는데, 흘러가며 듣다 보니 인생곡을 찾게 된 것이다. 어떤 곡이 매일 들어도 시원하고 질리지 않는 노래라면, 이 곡은 언제 들어도 그 순간에 멈춰서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문득 홱 하고 뒤돌아본 회상과 같은.




 전체적으로 잔잔한 멜로디 구성이 참 좋았다. 살면서 천 번도 더 들은 곡 같은데, 이제는 뭔가 아련하면서도 갈색의 노을을 머금은 느낌을 받는다. 언제 들어도 따스하고 그리운 곡이다. 그때마다 멈춰서 본 장면이 그리운 걸까. 아니면 되돌릴 수 없는 모든 것들에, 붓으로 찍어둔 먹점처럼 그리움이 묻어있는 것일까.


 조금 가벼운 느낌의 드럼에, 더욱 짙은 가수의 목소리가 입혀져 있다. 특히 훅(HOOK)에 참석한 피처링 가수의 목소리가, 랩 부분의 느낌과 거의 흡사하다. 처음에는 한 가수가 전부 부른 것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명의 목소리 모두 부드러운 딱딱함을 지녔다.




 진정성이 담긴 가사는 불쑥 지금이 몇 시냐며 묻는다. 너무 빠른 시간은 야속하다며 기다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달리자고, 아쉬움을 남기지 말라고 듣는 이에게 건넨다. 어린아이가 커서 자기 일, 음악을 한다고. 매번 끊지 못한 담배나 결혼하는 친구의 넋두리에도. 그러다가 끝나고 만나자는 약속에, 살만한 삶이야라고 외치고. 또 그간 받은 사랑에 놀라움을 표한다.


 '시간은 참 빨라, 어제와 오늘의 유행도 달라. 시간이라는 화살은 얼마나 더 멀리 날아갈까.'

 '시간을 아주 잠깐만 잡아 두고파 난 오늘 밤만이라도.'

 '흘러 흘러 흘러가, 결국엔 흘러 흘러가.'


 초반부와 훅의 가사가 너무나도 좋았다. 언제 들어도 익히 공감할 수 있는 적힘이라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발걸음을 멈췄나 보다. 벌써 지금의 세월이라고.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라는 건, 결국 아쉬웠다는 뜻이다. 아쉬움 없는 과거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 한 번 더 새기자는 다짐이 아니었을까.


 자랑스러운 내 음악으로 이성과의 일화를 떠올리고. 기특하게도 그때의 소중함을 알고, 한창 즐겼다고 한다. 가장 마음에 닿은 가사였다. 바스러지듯 지나가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항상 뒤돌아보면, 그립다. 괴로웠던 때에도 다시 뿌리지 못할 향수가 진한 자취를 남겼다. 소중하다는 건, 일상 그 자체이다.


 귀중한 시간에 반가운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더 찬란할 것이다. 힘들다고 하나 좋은 기억들을 나눌 수가 있으니, 외로워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얻은 에너지로 또 하루를 일하고, 다음의 장면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 막상 두려워서 용기 없었던 앞날도, 겪어보고 지나고 나면 생각보다 별 거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삶을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알 수 있으니.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고. 부끄러워도 결국 나아가면 된다. 또 혼자서가 아니었기에, 우리는 여기까지 왔고. 자갈길이라도 어디든 서로 밝히면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내 매봉역에는 몇 번의 전철이 왔을까. 참 오래도 됐다. 가뭄이 서린 눈물을 원망한 때에도, 이 곡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다가오는 지하철 소리가 마음을 시리게 긁는 듯했다. 그리고 또, 우연한 행복과 보상을 가졌을 때에도 함께였다. 아, 멈춘 회상은 결국 인생이구나. 노래이니까, 그 뒤에는 곡이 뒤따르는구나.


 서로 같이 나아감을 주장하는 곡이라도. 벌써 시간은, 어차피 결국 흘러간다는 것을 그때마다 들려줘서 무척 좋았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도 마찬가지이고.


 나중 그 언제의 나는, 또 어떤 매봉역에 멈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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