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9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별을 데려오는 밤

Seori - 긴 밤

by 훈자까 Mar 12. 2025

 뜬 눈으로 밤을 보내야만 하는 날에 빠짐없이 꺼내 듣는 멜로디가 있다. 오후에 마신 카페인이 유독 잘 받는 날이거나, 큰 걱정을 코앞에 뒀거나, 부산한 감정들을 정리 못한 그런 때에. 나는 긴 밤을 지새운다.


 목소리에는 매혹적인 서리가 깃들어 있다. 단지 차갑기만 했다면, 슬픈 느낌만 가득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차가움을 아름다움이 감싸고 있다. 저문 밤하늘색을 목소리로 표현한다면, 정말로 이렇게 들리지 않을까 하는. 첫 소절을 듣자마자 깜짝 놀랄 정도로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마치 서늘한 밤하늘을 껴입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색다른 포근함이 너무나도 중독적이다.




 긴 밤이 오면, 널 데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난 잠이 오질 않고, 애써 돌아가기가 아쉽다고. 텅 빈 방 안에서 텅 빈 공기를 혼자서 견디지 못하고 서 있는 애처로운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날 외롭게 하는, 공허한 이 밤이 내게서 널 데려간다.


 밤이 오면 헤어져야만 하는 안타까운 순간에 공감이 일렁인다. 무척 아쉽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내리는 칠흑에 대한 원망이 잘 나타나있다. 날 사랑해 달라고, 집에 가기 싫다는 가사에는 진심과 애틋함이 묻어있다.


 또 기리보이의 피처링은 곡의 분위기에 잘 녹아든 느낌이다. 특유의 개성 있는 가사에는 비유감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긴 밤을 새워 달을 재우자는 표현에서 적잖이 감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천장이 도화지가 되어 해가 뜰 때까지 널 그릴 거라는 중의적인 전달까지. 이별이 찾아온 밤을 부르는 곡에 세부적인 생동감을 확실하게 실어준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을 때의 안타까운 이별을 담은 노래이지만. 이뿐만이 아니라 밤은 정말로, 다중적인 이별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밤 10시 이후의 생각들을 멀리하고 경계하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처음 보고선 꽤나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이 시간만 지나면 감성적이게 될 수밖에 없는,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은 아니나 불안정한 것들이 많다. 그날 따스한 낮의 감정을 이별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더욱 경계해야만 하지 않나 싶다. 그 쓸쓸함에 이루어진 갑작스러운 행동은 보통 다음 날 후회를 불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또 콘서트를 끝낸 한 가수가 귀가한 뒤, 닥쳐온 외로움이 자신을 루저로 느끼게 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몇몇 친구들과의 친밀한 만남을 끝내기만 해도 허전함이 느껴지는데, 공연한 하루의 종막은 얼마나 큰 이별일지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밤은 공허한 이별의 시간이다. 어떻게든 늦출 수는 있으나, 결국 잠에 드는 건 홀로 행해야만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특히 잠 못 드는 밤은 무척이나 지글거리고 괴롭다. 긴 밤을 보내야만 하는 당신에게, 이 곡이 서늘한 위안과 잔잔한 안식을 건네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이전 04화 아련함의 향을 피우는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