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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함의 향을 피우는

장범준 - 봄비

by 훈자까

봄비가 내린다. 밤에만 맡을 수 있는 그 특유의 봄내음이 더욱 향긋해진다. 곧 무수히 피어날 것들에 대한 반가운 인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맘때쯤 꼭 듣는 곡이 있다. 나는 봄비를 듣는다, 그리고 그리운 무언가가 몽글하게 피어난다.




도입부의 정겨운 기타 소리는 곡의 장르가 마치 '장범준'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헤어진 연인이 내리는 비와 함께 떠오르는, 봄의 밤하늘에 흐느끼는 목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평소보다 더욱 미성적인 분위기를 띈 목소리에는 아련함이 잔뜩 묻어있다. 내리는 것은 헤어진 이와 동일시된다. 이런 날마다 그이와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생각이 든다. 누구나 이별을 경험하면서 가질만한, 그런 그리움 말이다.


봄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직접 전한다. 다른 곳보다 특히 더 높고 가느다란 음색이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보여주는 고백을 할 때, 떨리는 그 분위기와 흡사하다. 또 공허한 그리움을 외칠 때도, 듣지 못할 걸 알기에 더욱 구슬프게 외치는 것처럼.


아, 비가 올 때마다 그녀를 데려다줬나 보다. 사실 어떤 비이든 상관없지 않을까. 옷깃을 넘어 모든 게 흠뻑 젖어도, 단지 함께 비와 동행하는 그 장면이. 무척 애타고 뭉클하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같은 걱정이 만나 더욱 따스해질 마음일 테니.


결국 봄비를 계속해서 기다린다. 집 앞을 거닐어도 보고, 내리는 광경을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손바닥에 적신다. 그만큼 그날의 사랑은, 지금 이 비를 타고 한 번 더 나에게 내렸으면 한다. 그때 같았던 마음처럼, 지금 번지는 이 비내음도 전해진다면.




별 뜻 없이 잔잔하게 틀만한 곡은 아니다. 재생하는 순간 그 아련함의 의식 속으로 나를 불러들인다. 그만큼 애틋함과 아련함이 깊은 곡이라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느낌이다.


언제 어디서 들어도, 나를 봄비가 내리는 작은 터널 앞으로 데려다준다. 그곳의 동그란 가로등엔 살구가 피어있고, 주위에는 벚꽃향이 만개해 있다. 하늘거리는 연분홍 사이로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나에게 고개를 돌린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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