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한 거리감의 동경
그윽함을 머금고 바라보는 하얀 행성이 끊임없이 찬란했으면 한다. 비현실적인 감각이라도 그만큼 소중한 존재이기에 무수히 떠오르나 싶다. 우울했기에 그들을 찾아낼 수 있었고, 감수성을 펼칠 수 있었다. 눈에 비친 행성이 위태롭거나 갑작스럽게 사라진다면, 그의 마음은 한순간에 깨지지 않을까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물론 밤하늘에 존재하는 행성은 내가 받은 감수성이자 영감, 혹은 발전적인 '우울'이다. 그러나 이것이 건네준 소중한 사람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언제든 변할 수 있는 현실과 정적을 달리는 밤하늘은 가치는 소중하나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나에게 동경인 사람들에게 매번 기도를 올린다. 특정 신을 믿지도, 교리에 충실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한다. 무해하고 소중하니까.
혼자만의 가치관을 버젓이 세우지 못한 때가 있었다. 코로나가 자욱한 시기 사소한 나의 생활은 죽은 듯했다. 몇 개의 작은 도전을 했었고, 눈에 띄는 결과를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렇게 바깥 생활의 강제적인 부재와 실패만 남은 열망들에 숨소리가 점점 작아져갔다.
생존이 위태로운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반짝이고 싶지 않았다. 나를 불태워서 자랑스러운 별이 되고 싶었던 마음도, 자기애 가득한 이상향을 꿈꾸는 것도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밤하늘은 영원 같은 암전이었고, 먹먹한 어둠 그 자체였다.
그렇게 얼마를 최소한의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흘러갔을 때, 이것이 마지막 항전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패배하는 것에 신물 났던 나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다. 과거 그 사람에게 들었던 정겨운 응원이 그리웠어서, 우연했던 인연에 손을 흔들었다. 나를 좀 구해달라는 듯이.
밤구석 어딘가 차지하고 있던 그 행성이 다시금 반짝인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받은 답장에는 그 정겨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그때의 모습 그대로, 현재까지 나를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항상 잘하고, 멋있는 사람이잖아요.'
다급히 수렁에서 벗어난 나는 하나의 동경에서 무조건적인 응원을 배우고자 했다. 항상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 또한 행성들에게 무조건적인 기도를 베풀고자 마음먹었다.
'한 해가 갈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에 동감하는 바이긴 해. 그래도 어떤 부분은 더욱 깊어지니까, 그걸 체감하는 것도 기분 좋은 세월인 것 같아.'
올해 그 사람의 생일에 내가 보낸 축하 문장 중 하나이다. 내가 받은 것이 참 따뜻하고 거대해서, 해줄 수 있는 게 깊어지는 관계의 묘사와 응원이라고 생각했었다. 서로의 반짝임을 다독여줄 수 있는 사이는 꽤나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언제 어디서든 꾸준히 빛을 갈고닦는 사람이기에, 때가 되면 더욱 밝게 반짝일 것을 알고 있답니다.'
올해 내 생일에 그 사람이 보낸 축하 문장 중 하나이다. 글과 마음씨가 참으로 유려하다. 밤하늘에 박힌 보석의 몸집이 더욱 부풀려지는 것 같다, 맑은 광채와 함께.
더욱 빛나는 미래에서, 반가울 얼굴로 맞이하는 동경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게 살고 싶어진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항상 응원하고, 기도한다. 그들이 행복하고 빛나기를. 열렬한 마음인 것도, 감정적인 치우침도 아니다. 단지 시냇물처럼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행하려고 한다. 밤하늘에 수놓인 그들의 빛무리가 냇가의 바위들을 비추는 모습이 눈이 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