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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Nov 12. 2024

비와 우울은 손잡아 내린다

계절과 마음을 적시는

 오늘은 비가 온다. 그리고 내 세상, 밤하늘에도 비가 내렸다. 나를 응원하던 저 행성의 빛들도, 잠잠히 흐르던 냇가의 유순한 감정들도 먹구름과 빗소리에 흔적을 감췄다.


 문득 그런 날이 있다. 분명 일기예보는 하루종일 화창하다고 했는데, 기상 직후부터 어둑함이 내려앉은 그런 날말이다. 또 이런 때에는 나가고자 하는 약속과, 의지가 없는 날이었다.




 투둑, 골목길에 뿌리내린 지붕들을 방문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쏴아아 하는 함성과 함께 밀려온다. 방금 전의 노크는 선전포고인 듯, 여기저기서 내 세상을 두드린다. 조용하던 집집마다 방울이 맺힌다. 저들을 막아서고자 나서는 이는 감정이자, 우울이다. 그들이 밀려 들어오면 내 우울이 사라질까, 아니면 합쳐져서 거대한 무언가로 바뀌어버릴까.


 전장이 차갑다. 고왔던 모래는 진흙이 되어 길가에서 저마다의 향을 뿌린다. 축축함을 한껏 머금은 이들의 설렁임에 내 마음도 처지는 듯하다. 끝까지 내려앉아 길가의 저 나무 벤치를 바라볼 상상은 무척 꺼려진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했던 음성들이 잦아든다. 익숙해져서인지, 실제로 사라져 가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한 해가 갈수록 계절이 열대 기후처럼 변모해 간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지금의 비도, 소나기. 스콜과 같겠지.


 안도했다. 너무 오래도록 싸워댔으면, 아우성이 나오지 않았을까. 우울의 발전성을 찬양했던 과거의 내 모습에 조금 괴리감이 든다. 이 괴리감조차도 익숙한 트릭과 같다. 결국은 감정이든 행동이든, 하나의 결과라는 패를 만들어낼 것을 나는 안다.


 세력을 거의 굽힌 빗줄기에 우리 군도 휴식을 자청했다. 그렇게 조금싹 잔잔해졌다.

  




 손가의 나무창을 활짝 젖혔다. 방패막이로 쓰던 이불은 마치 단풍잎 같다.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몇 번의 발길질을 튕겼다. 그리고 축축하던 지상은 습기를 가득 머금어 물렁해졌다. 서로 지친 비와 우울은 오늘의 친구가 되었고, 잠시 전의 과거는 볼 빨간 웃음거리로 변했다.


 간지럽히는 긴 여운이 촉촉함을 살갗에 전했다. 눈을 감고, 넌지시 감상만을 취했다. 비에 쌓인 것을 글로 그려내는 상상을 하고, 숨어있던 밤하늘의 정경을 다시 찾아냈다.


 한동안의 물줄기에 구석구석이 깨끗해진 모습이었다. 적셔진 별들은 생글한 모습으로 더 날아오르라는 손뼉을 쳤다.


 꽤나 젖은 날개를 말리며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한순간이지만 밤하늘 전체가 고개를 끄덕인 듯했다.


 이번에 나온 패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걸려있는 검은 벽보에 어느 한 별의 이름이 적힌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의 동경을 맞이하기 위해 안부를 적는다, 마치 손글씨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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