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유지시키는
오랜만에 내린 비가 다 그치고, 밤하늘에는 더욱 선명한 별망울들이 맺혀있었다. 동경의 조각들을 한 치의 마음 씀 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느 하나라도 걱정 없이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임을 다시금 느낀다.
아직 별을 밤하늘에 수놓는 법을 모를 때였다. 그래, 많이 어렸었다. 물론 지금도 어른이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지만, 그때는 더더욱.
매번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던 그때는 참 순진했다. 아직 동경심도 갖지 못한 때라서 나를 소개하는 말조차 부끄러워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때는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개성 있고 좋은 사람들처럼 내게 비쳤다.
모든 이들을 다 챙기고 싶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는 결과가 뻔한 욕심을 부렸다.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니, 좀 더 친한 이들과 자주 보는 데에 편안함을 느꼈다. 사람이 무리를 형성하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누군가는 섭섭함을 내비쳤다.
그 섭섭함은 부정적인 안개를 부풀려 나를 한기에 가뒀다. 쓰라린 추위에 나는 더욱 따뜻함을 찾게 되었고, 그렇게 인간관계는 점점 끈끈해짐과 동시에 축소됐다.
점점 작아지는 울타리는 한눈에 보일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견고해졌다. 이제는 마음속에서 만남을 기대하는 이들은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을 정도이다.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0'에 수렴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소중한 이들이 모두 내가 바라는 동경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내가 그런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과분한 축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지금도, 행복하다. 터놓고 말할 수 있다는 소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명확한 현실에.
가꾸는 마음의 평수가 적어질수록, 새로운 관계에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 생기면 호기심이 솟으나, 안 생겨도 그만인 기분이었다.
물론 혼자만의 고독이 너무 거대한 성격이었기에 쓸쓸했다, 매일이. 일상에서 양손처럼 따라다니는 우울과 고독에 진저리 칠 때도 있었다. 자꾸만 속을 파헤치는 성격을 원망할 때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러한 우울도 든든한 버팀목 같은 그들이 있었기에, 일상을 온전하게 유지시킬 수 있었다. 어디 한 군데 모나지 않고 밤하늘의 커다란 달과 동경만을 쫒는, 그런 날개를 피워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둡기만 하던 곳은 밤하늘이 되었고, 고독과 우울은 나만의 감수성이 되었다.
내가 바라보는 우울, 동경, 관계에 만족감과 감사함을 느끼는 밤하늘이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골목길의 짖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이곳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