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밤하늘이 생겨 감사함을 느낄 수 있기 전에는, 탈출구가 없는 어둑함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컴컴한 동굴 같았다. 내부의 조형물이 발광체가 된다고 한들, 나를 더 깊은 고독으로 자빠뜨리는 함정이 아닐까 두려웠다.
지금에서야 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전까지는 끈덕지게 나를 괴롭혔다. 줄어들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왜 나를 따라다니는가에 대해서 끝없이 고민해 왔다. 특히 고독하다는 말은 적잖이 쓸쓸해 보여서, 혼자만의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그래, 결국 쳐낼 수 없는 존재라면 어떻게든 적응하고자 했다.
고독하다는 말은 항상 무서웠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일상이 빡빡할 때가 있었고, 매번 누군가와 함께 했다. 휴식을 갈구하면서도 귀가하지 않았다. 지인들과의 시간이 무척이나 즐거웠고, 남아도는 체력을 몽땅 소비하고자 했다. 부족하다고 한들, 억지로라도 무리에 붙어있었다. 당시에는 그 친밀감을 더욱 사랑하고 싶다는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온몸이 피로감에 찌들었을 때에도 뭔가를 계속 꺼려했다. 집은, 침대는 그저 휴식을 취해야만 하는 공간이라고 단정 지었다. 아마 다반사로 일어나는 잡생각들을 억제시키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해지는 게 가장 무서운 법이라고 했던가. 어느 순간엔가 모두와 함께 있음에도 나는, 고독함을 느꼈다.
그 이후로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찾아왔다. 풀썩 쓰러져야만 취했던 휴식은 내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관계의 소소한 사건에도 기쁘고 울었던 예전의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게 되었다. 또한 흔들림이 약해졌다고 한들, 떠나가는 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풍파였기에, 회의감을 더욱이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서서히 납득하는 게 일상인 날들이 되었다. 회의감이었던 감정은 당연시하게 되었고, 인간관계의 이상향을 쫒지 않게 되었다. 길든 짧든 누군가와의 헤어짐에 있어서는 언젠가 발생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끄덕였다.
나의 신분과 환경이 바뀌어도, 이름 석 자와 액면가, 가치관은 동일하기에. 내가 좋아했던 이들은 변하지 않는다고 억장처럼 믿었다. 스스로 행동이 바뀐 것은 인지하지 못한 채, 단지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당연히 존중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무너져버린 기나긴 틀에 잠깐의 배신감과 현실감을 송영했다.
'사람 사이라는 게 다 똑같구나.' 하며.
사람에 대한 원망보다는, 꿈을 간직하려던 나에 대한 조소가 훨씬 컸다. 감정은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것인데, 무한정 잡아두려 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러고는 금세 어둠이 내렸다. 완연한 고독이었다. 과거의 좋았던 관계들을 아련해하고 다시 맞이할 수 없음에 몸부림쳤다. 그러면서도 아득한 현실성은 한계적인 부분을 지적하며 지금처럼 살아가라 소리 질렀다.
괴리감은 항상 마음 한편을 찔러왔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자신이 다행이었고, 또 불만족스러웠다.
선뜻 말이 안 되는 문장을 마음으로 이해했던 어느 때에, 한 번 더 송연함을 느껴보고자 시도했다. 이것조차 어떻게든 익숙해지면, 당연시한 일상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익숙해지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어느 누가 고독함에 익숙해지고 싶어 하겠는가. 외로움과 쓸쓸함을 직면한 사람은, 도피처를 찾는 것이 당연한 법이니.
결국 흘러가는 시간은 일정한 과거가 되고, 나를 찔러대는 괴로움의 통각이 조금 줄어들었다. 통증에 무뎌지기 위해 자존감을 몇 번이나 풀러 내었고, 동굴이 내가 있어야만 하는 순리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줄어듬을 기회로 삼아, 일상을 유지시켜 주고 해소할 수 있는 창구를 찾아 나섰다. 친한 친구도, 사랑했던 사람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 결국에는 내가 행하는 무언가만이 바꿀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오로지 관계의 유지와 고독함에만 빠졌던 세월답게,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이 나는 참 모자랐다. 그래도 급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냥, 조용하고 묵묵히 시도해 볼 뿐이었다.
그렇게 시도들은 모이고 또 모여, 나락을 하나둘 세우기 시작했다. 순전히 혼자서 피어낸 양분은 나를 허발되게 하였고, 곳간은 조금씩 채워져 갔다.
배가 부르니 객관적인 판단에 애쓰게 되었고, 행동의 부족함을 복기시켰다. 그렇게 어둠뿐이었던 세상에 들판이 생기고, 거기에서 지내던 나는 누워서 별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동경하는 모든 것들을 내 마음에 품자, 아늑한 밤하늘이 열렸다.
참으로 힘든 여정이었다. 보편적으로 흰 도화지에 무언가를 그리는 남들이 부러울 때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마치 비련의 인물처럼, 손발이 오그라드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검은 도화지를 두드리고 펼치고, 또 구겼다. 소외적인 감정들과 그림자를 마구 쌓으니 입체감이 선명해졌다.
해가 비추지 않아도, 멀찍이 은은한 달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구겨진 틈새는 벽화처럼 동굴에 찍혔다. 그간 시도해 왔던 단출한 역사는 화려한 무늬의 방벽이 되었다.
그토록 고독해봤으니, 더욱 짙은 검정을 품어낼 수 있었다. 흠, 만일 고독하지 않았더라면. 또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지 않았을까. 사람들의 삶이 단 하나도 똑같을 수 없는 것처럼.
급히 옅어지는 부분을 걱정스럽게 개칠한다. 옅어지기만을 바랐던 세상이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유약을 씌우고 싶은 마음이다.
생각하기도, 꺼내기도 어려웠던 고독이라는 말이. 이제야 동반자라고, 소중한 나 자신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