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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큰 산, 후지산

by 하람

일본의 상징 같은 후지산(3,776m)은 매년 7월부터 9월 중순까지 한시적으로 등산이 허용된다. 이때를 놓치면 그다음 해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태 째 떠날 계획을 세웠으나 두 번 다 포기한 전력이 있다. 왜 그리 지진 소문이 무성한지, 화산은 또 왜 금방 폭발할 것만 같은지. 금방이라도 재난이 일어날 것 같은 소문에 발목이 잡히곤 했다.

그동안 후지산의 화산 폭발은 대략 100년 주기로 일어났단다. 그런데 1707년에 분화한 이후 현재까지 300년이 넘도록 폭발이 없었다고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사람들은 내부에 더 강력한 힘이 축적돼 있을 거라는 합리적인 추측을 했다. 화산 전문가들도 언제 분화가 일어나든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했단다.


후지산 등반 계획 삼 년째인 올해는 반드시 실행에 옮기리라 작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강진이 일어났던 러시아 캄차카 반도 해역의 영향을 일본이 바로 받을 거라고 했다. 만일 일본이 영향을 받는다면 지진해일이 일어날 수 있고, 후지산 화산 폭발로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일리가 있긴 했다. 뉴스에서도 다뤘던 내용이기에 나 역시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포기하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노화를 향해 가는 신체가 다음 기회까지 기다려줄지 알 수 없다는 것이 한몫을 했다.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이 떠올랐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는 양치기 소년의 말에 매번 속았던 마을 사람들처럼 나도 지진이나 화산 폭발에 밀려 더 이상은 주저앉지 않겠다고 작정을 했다. 추위도 태풍도 문제없을 정도로 준비물을 철저히 챙겼다. 가족의 염려를 안고 떠나는 산행이라 잘 다녀와야 한다는 부담의 영향이었다.


지난 8월 7일, 드디어 후지산을 향해 떠났다. 일본이 가까워지자 기내 창밖으로 후지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날씨까지 나를 돕는 거라며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화창한 날씨는 시즈오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내 곳곳에서 후지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느낌이 좋았다.


입산 신고를 하고 허가증을 대신할 띠를 받아 손목에 둘렀다. 이로써 모든 준비는 끝났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부윰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산행이 시작되었다. 내가 걸을 길은 후지노미야구치 코스였다. 이 코스의 장점은 다른 코스에 비해 거리가 짧은 것이다. 그 대신 매우 가파르고 험하다. 박차고 올라가야 하는 코스 역시 많다. 직접 현장을 걸어보니 역시 지금까지 올랐던 산들과 달랐다. 걷는 전 구간이 화산재와 날카로운 바위로 덮여 있어 풀 한 포기 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척박한 땅이었다. 정상인 ‘겐가미네’를 향해 가는 길은 화산재가 끊임없이 먼지를 일으켜 걷는 것도 고역이었다. 후지노미야구치 5합목에서 시작된 걸음은 신7합목의 고라이코 산장에서 잠시 멈추었다. 정상 등정을 위한 숨 고르기였다.


일본의 속담 중에 ‘후지산을 한 번도 오르지 않은 바보, 두 번 오르는 바보(富士山に一度も登らぬ馬鹿、二度登る馬鹿)’가 있다. 힘들게 올라가 보니 별 것 없더라는 의미란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 역시 다시 가고 싶은 산은 아니다. 그러나 누가 가고 싶어 한다면 한 번은 가볼 만하다고 얘기하겠다. 일본인에겐 신성한 산으로 여겨져 고대부터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거니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그런 형태의 산도 아니기 때문이다. 후지산은 온통 화산재로 덮여 있다. 오르는 길은 물까지 부족해 식생에 적합한 환경도 아니다. 알려진 명성과 달리 황량하고 삭막한 땅이다. 걷는 내내 먼지와 화산재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후지산의 산장은 식사를 위한 물외에는 물을 제공하지 않았다. 물이 없는 산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런 까닭에 샤워는커녕 세수조차 할 수 다. 나는 준비해 간 코인 티슈로 얼굴과 손을 대충 닦고, 산장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를 했으며 잠시 눈도 붙였다. 고산의 바람은 늦은 밤이 되면 얌전해짐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자정 무렵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헤드랜턴을 하고, 양모 비니와 넥 게이트, 초겨울용 장갑에 바람막이 차림이었다. 천천히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8합목을 지나자 다리가 후들거렸고 숨쉬기도 힘들었다. 고산임이 실감되었다. 바람도 잠에서 깼는지 거세지기 시작해 고어텍스 점퍼를 덧입고 걸었다. 뒤로 처지는 사람은 계속 늘어났다. 9합목에 이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호흡이 가빠져 발걸음은 더욱 무겁고 느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센 바람이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이 덤볐고, 추위는 절정에 다다랐다. 부랴부랴 패딩점퍼를 덧입고 바지 양 주머니에는 핫 팩을 넣어 체온을 유지했다.


고산 트레킹을 할 때마다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할까?’에 생각이 미친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 더 강해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걸었다. 건장한 세 명의 남성이 계속 뒤에서 응원을 보내준 것도 큰 힘이 되었다. 이들은 초로의 여성이 혼자 온 것을 대단하게 여겼다.


정상인 10합목에 도착했을 때의 희열은 경험자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다.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에 취해 마음껏 좋아했다. 하지만 나를 시샘하는 듯 새벽 4시의 후지산 바람은 매서웠다. 살을 에는 추위에 신사 ‘센겐다이샤’에 들어가 바지 위에 오버트라우저를 덧입었다. 8월의 후지산 정상 ‘겐가미네’의 추위는 엄청났다.


여전히 화산 활동이 진행 중인, 태평양을 둘러싼 불의 고리 후지산. 이 산은 2013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자연유산에서 탈락하고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까닭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환경오염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에는 후지산보다 높은 산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런 까닭에 후지산의 산장들은 환경보호에 적극적이고 민감했다. 당연하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에 모두 약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 나 역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아울러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를 바로 세워준 길과 그 길을 품고 있는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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