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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에서 행운의 동물 '비스까차'를 만나다

by 하람

오래전부터 간직했던 버킷 리스트는 잉카문명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반대편에 있는 그 먼 곳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간을 만들었고, 또 하나의 소망 실현을 위해 페루로 향했다. 26시간의 비행시간에 온몸이 배배 꼬였지만, ‘리마’로 향하는 하늘 위에서 여명을 만나자 다시 기분이 산뜻해졌다.


페루의 남부도시 ‘나스카’에서 나스카 라인을 보기 위해 경비행기로 하늘을 날았다. 이 신비로운 그림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도 300여 개가 넘는단다. 나는 우주비행사, 원숭이 등 기이한 선, 도형, 동물의 형상을 찾느라 고개를 한껏 빼고 눈에 힘을 주었다. 조종사는 나스카 라인이 잘 보이보록 기기묘묘하게 비행기의 몸통을 틀어주었다.


나스카 라인은 건조한 날씨가 유지되며 오랜 세월 동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단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나는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그리고 선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베테랑 기장은 10명의 좌우 승객이 모두 그림을 볼 수 있도록 곡예비행을 했다. 몸이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자 멀미약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뱃속에서는 전쟁을 선포했다.


해발 2,450m에 위치한 ‘마추픽추’를 우리는 ‘잉카제국의 잃어버린 도시’라고 부른다. 페루의 고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이곳은 1911년에 예일대학의 ‘히람 빙엄’이 발견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당시 이곳에는 두 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비 내리는 날씨였지만 설렘과 기대를 품고 기차를 탔다. 마추픽추는 날씨가 매우 변덕스럽다고 했다. 기상 악화로 마추픽추를 제대로 못 만나는 팀이 부지기수라고 들었던 터라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곧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음이 확인되었다. 날씨가 맑아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공중에 뜬 신비의 도시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가슴이 뛰었다. 행운의 동물 ‘비스까차’를 마추픽추 초입에서 만났던 것이다. 비스까차는 앞모습은 토끼, 뒷모습은 다람쥐를 닮았다. 거의 사람 눈에 뜨이지 않는 동물이라서 비스까차를 보는 건 극소수의 여행자뿐이란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도착한 보상을 제대로 받은 것이다. 어깨를 으쓱거렸다.


태양을 묶어두는 기둥 ‘인띠와따’도 ‘태양의 신전’이나 ‘달의 제전’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했지만, 나는 그때 그 순간의 주인공이 나인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날마다 사진 찍기 어려울 만큼 여행자가 많았다는데 내가 방문한 날은 우연히 매우 한갓졌기 때문이다. 그 덕에 여유롭게 거닐 수 있는 행운을 마음껏 누렸다. 적당한 햇살과 잔잔한 바람으로 행복했다. 늙은 봉우리 ‘마추픽추’ 앞에서 젊은 봉우리 ‘와이나픽추’를 바라보며 나이는 잊은 채 잉카 트레일을 꿈꾸었다.


‘우루밤바’의 염전 ‘살리네라스’와 농경기술을 연구하는 ‘모라이’를 들리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고도 3,300m에 염전이 있다는 것은 직접 봐야 믿을 것 같았다. 이 신기한 현상은 나스카판과 남미판이 충돌을 일으켜 안데스산맥이 융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염전은 산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토판염이 국내로 들어오면 굉장히 비싼 값에 팔린단다. 팔랑 귀를 갖고 있던 나는 즉석에서 작은 핑크소금 몇 봉지를 구입했다.


‘모라이’는 고도 3,800m에 위치해 있어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계단식 밭인 ‘안데나스’를 독특한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전 세계 최고의 학자들이 감자를 비롯한 농작물을 연구하고 있단다. 가장 아래쪽에 심은 작물 재배에 성공하면 그 위 칸, 다시 더 위 칸으로 해마다 올려 심음으로써 작물의 고도 적응을 성공시킨다는 설명을 들었다. 인간이 농작물 재배를 창의적으로 개발한 좋은 사례가 이곳에 있었다.


여행은 가끔 샛길로 빠지는 재미가 있다. 페루의 수도 ‘리마’ 인근 외딴 바닷가에 들렀다. 이곳에는 영화 같은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일부러 사람들이 현장을 보러 온다고 한다.


‘한 사제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랑하는 그녀는 자신의 이복 여동생이었다. 천륜을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와 헤어진 사제는 한적한 바닷가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자리에는 레스토랑이 생겼다. 하지만 외진 곳의 레스토랑에는 손님이 오지 않았다. 고심 끝에 주인은 운영 방법을 바꿨다. 사제가 떨어졌던 절벽에선 레스토랑의 종업원이 사제복 차림으로 다이빙을 했고, 직원들은 사제복을 입고 서빙을 했다. 그 후 소문은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져 지금은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갔던 그날도 사제 복장의 다이버가 바위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곤 떠나간 그녀를 잊지 못하는 듯 슬픈 얼굴로 이별의 손을 흔들더니 멋진 곡선을 그리며 다이빙을 했다. 근처에는 사랑놀이에 빠진 젊은이들의 사랑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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