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강 수상시장에서 쌀국수를 사 먹을 테야

Oct 22. 2025

내 마음 주머니 속에는 가고 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일들이 들어 있다.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겠으나 기회가 된다면 꼭 실행에 옮기고 싶은 것들을 차곡차곡 넣어둔 것이다. 베트남의 ‘메콩강 수상시장에서 쌀국수 사 먹기’도 그중 하나였다. 후배가 베트남으로 파견 근무를 떠난다고 할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를 위해 나가는 것만 같았다.

비용을 아끼려고 한밤중에 출발하는 호찌민으로 가는 저가항공을 탔다. 새벽 두 시가 넘어 도착한 공항은 후덥지근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 열기에 적응하며, 여행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마음껏 즐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메콩강을 가려고 후배와 껀터 행 슬리핑 버스를 탔다. 후배의 친구 한 명이 동행했다. 현지인이 주로 탄다는 이 버스는 쿠션감 있는 이층 침대가 양쪽으로 좌석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듣도 보도 못 했던 버스였다. 방에 들어가듯이 신발을 벗어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버스를 탔다. 내 몫의 침대에 자리를 잡자 버스 안내원이 처음 보는 과일과 소금을 나눠주었다. 신기해하며 과일을 소금에 찍으니 재밌는 맛이 되었다. 중간 휴게소에서는 동승했던 안내원이 내리는 승객 모두에게 슬리퍼를 나눠주었다. 내 신발은 자리에 두고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을 다녀오며 어린아이처럼 깔깔거렸다. 이렇게 흥미로운 여행이라니. 유쾌, 상쾌, 통쾌가 보기 좋게 삼합을 이루었고, 가을바람 흉내를 내는 시원한 여름 바람에 덩달아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베트남 껀터에 대한 기대감으로 잠자던 세포들을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후배의 수고로움은 완벽하게 빛을 발했다. 메콩강 줄기가 앞마당인 리버사이드호텔을 껀터 거주 한국인의 도움으로 예약을 했다는데 전망이 기가 막혔다. 마치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옆구리에 강을 끼고 앉아 점심 식사와 커피 호사를 누렸다. 최고의 서비스와 풍미 있는 음식에 압도되었다.

뚜벅이가 갑자기 귀빈이 되고 보니 눈에 뵈는 게 없었나 보다. 가끔은 이런 귀족놀이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떠났지만 둘이 되었고, 호찌민에서 셋이 되더니 이곳 껀터에서는 넷이 되었다.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정을 나누는 우리는 한국인이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에 현지인 선주를 만났고, 5시 10분에 메콩강 선착장을 출발했다. 수상시장까지 가려면 30여 분이 소요된단다. 베트남 여행의 목적이 메콩강 수상시장에서 쌀국수 사 먹기가 아니던가. 도착하기 바쁘게 쌀국수를 파는 배부터 찾았다. 국수는 한 그릇에 3,000원이라고 했다. 1,000원으로 알고 있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불현듯 ‘혹시 외국인이라고 더 받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얼른 생각을 바꾸었다. 맛 좋은 쌀국수에 더해 그것을 파는 아저씨의 미소 띤 얼굴이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시름을 초월한 듯 환하게 웃는 얼굴 표정에 의혹을 품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국수 1,000원에 쥔장의 미소가 2,000원이어도, 국수 3,000원에 쥔장의 미소는 덤이라 해도 만사 오케이였다. 웃음이 보기 좋은 얼굴은 또 있었다. 배에서 맨발로 과일을 팔던 아주머니. 이 분의 웃음은 행복 바이러스였다. 웃음에 빠져 과일을 지나치게 많이 샀더니, 아주머니의 웃음소리까지 과일 봉지 속에 들어 있었다. 하루가 기분 좋게 열리는 것 같았다.

수상시장에서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의 하루를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동이 트기 전부터 이미 시장은 열렸고, 많은 배에서 상하차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배에서 양치질하는 아이도, 쌀을 씻는 엄마도 볼 수 있었다. 물 위 시장에서 하루를 열고 닫는 사람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니 숙연했다. 누가 이 생생한 삶의 현장 사람들보다 더 잘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희망을 한 줌 꺼내 물 위에 뿌렸다. 정신이 개운했다. 누군가가 “베트남에서 어떻게 놀았어?”라고 묻는다면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자알!” 이것이면 된다.

호찌민에서의 새벽은 늘 행복했다. 여명으로 일렁이는 공원을 산책할 때 새들의 지저귐은 보이지 않는 신의 속삭임이었다. 눈꺼풀을 손으로 뜯으며 일어나 메콩강으로 나갈 때는 사춘기 소녀가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사람 반, 오토바이 반인 듯 어마어마한 오토바이족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화폐 계산이 낯설어 원화로 100원 꼴인 화장실도 2,000동이란 입장료에 놀라 들어가지 않았다. 많이 웃었으나 역시 나이는 못 속였다.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넘쳐나 숨이 가빴다. 호찌민의 920만 명이 넘는 인구와, 껀터의 420만여 명의 인구에 적응이 어려웠다. 앞으로 얼마나 더 불쑥 떠나도 문제없도록 건강이 유지될지 모르겠다. 부디 진시황제의 말년처럼 불로초를 찾아다니느라 돈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아무리 아닌 척을 해도 세월 앞에서 장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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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람 직업 주부

길 위에 서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며 '기쁨을 찾는 기쁨'을 만끽하는 지구별 여행자. 33년을 도서관 사서로 살다 정년퇴직했다. 장래 희망은 '멋진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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