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 스타일은 남들과 비교해 별나긴 한가 보다. 유명한 관광지나 대도시보다 낙후된 지역이나 오지에 더 마음이 가니 말이다. 이런 곳에선 자연스럽게 현지인과 어울릴 기회가 많아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여행의 묘미가 배가돼 피곤해도 피곤한 줄 모르고 즐긴다.
몽골에 가고 싶었다. 그곳의 너른 벌판에 누워 낮잠을 자면 세상 모든 시름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뜻 맞는 사람끼리 팀을 꾸려 몽골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를 위한 여행 같아 흔쾌히 응했다.
‘몽골 벌판에서 낮잠 자기’는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실현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1인용 매트를 챙겨 여행용 가방에 넣는데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마음이 한껏 달떴다.
첫걸음인 몽골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이다. 어린 시절 위인전으로 ‘칭기스 칸’의 무용담을 읽었던 것이 몽골에 대한 전부였다. 칭기스 칸이 말을 타고 달리던 그때의 벌판과 지금이 어떻게 다를지, 내가 벌판에서 낮잠 잘 수 있는 환경이 될지 등 모든 것이 궁금했다.
테를지 국립공원 안의 이동식 전통 가옥 ‘게르’에 여장을 풀었다. 쾌적했다. 굳이 흠을 잡자면 화장실과 샤워실이 공용인 탓에 위치 상 내게 배정된 게르에서 좀 떨어져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숙소까지 깔끔하니 최상의 여행 컨디션이 유지될 것 같았다. 테를지 국립공원 주변은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며 숲이 우거졌고, 산과 계곡의 조화로움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들판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이 대자연에 흡수되고 싶은 나의 소망과 맥락이 닿아있는 것도 좋았다.
툴강 지류 숲길을 따라 말을 달렸다. 몽골에선 누구나 말을 탄다기에 초보가 겁 없이 승마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그 실력이 오죽했겠는가. 다리가 후들거림은 물론이고 어깻죽지며 손바닥이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체험에 신이 났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툴강 옆에서 유유자적 망중한을 즐기기도 했다. 내가 나무 아래 그늘에서 단잠에 빠졌을 때 일행들은 수다 삼매경에 빠졌었나 보았다. 소란스러움에 눈을 뜨니 온몸으로 웃고 있었다. 이렇게 자연을 얼마나 즐겼을까, 우리 가까이에 몽골가족이 소풍을 나와 자리를 잡았다. 나는 과자 한 봉지를 들고 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몽골 가족 틈에 끼어 허르헉을 넉살 좋게 얻어먹고 있었다. 이를 본 일행들이 하나 둘 합류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며 어울렸다. 역시 인간의 정이란 나눌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 같은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다 군중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몽골 젊은이들의 씨름판이었다. 분위기나 응원의 열기로 보아 두 마을의 씨름대회임을 알 수 있었다. 체격 좋은 씨름꾼들은 윗도리를 벗어젖힌 채 특이한 복장으로 씨름에 집중했고, 구경꾼의 웃음과 응원 소리는 몽골 벌판으로 퍼져나갔다. 차를 세워놓고 우리는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기기묘묘한 구름을 이고 있는 광활한 초원에서 몽골의 놀이 문화에 빠져들었다.
여행지가 몽골인만큼 말을 더 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우린 계획된 일정을 취소하고 하루를 온전히 자유롭게 움직이기로 했다. 나는 숙소 뒤 바위산 트레킹에 나섰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의 거대함이 조심스럽긴 했으나 칭기스 칸이 정벌에 나서듯 덜 험해 보이는 방향으로 코스를 잡았다. 뙤약볕 속에 오르길 한 시간 반쯤 했을까, 천상의 세계인 양 펼쳐진 대평원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야생화 천지의 화원이 있음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바위산 꼭대기의 너른 들꽃 화원은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세상살이는 반드시 양이 있으면 음도 있다. 산을 내려갈 걱정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어디에도 내려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음을 확인한 후, 가장 안전해 보이는 곳에서 암벽을 타고 내려왔다. 두 다리가 벌벌 떨리고 오금이 저렸으나 다행히 침착함이 유지되었다. 무사히 땅을 밟은 후 위를 쳐다보니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지금도 그때 무사히 내려온 것은 몽골의 신께서 보살펴준 덕분이라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살랑거리는 바람으로 더위를 날려주었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도록 받쳐주었다. 내려온 후에 비로소 얼마나 위험한 도전을 했는지 알았다. 안도와 감사함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여행은 행복이다. 몽골 벌판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스며들었고 더욱 친밀해졌다. 미소로 시작된 웃음은 어느새 박장대소로 이어졌고, 게르는 힐링 퍼레이드를 벌이는 참새 방앗간이 되었다. 갖가지 소재의 얘깃거리가 여행에 풍성함을 배가시킨 것이다. 별들과 소통하기 위해 첫새벽까지 들판에 누워있었던 것은 또 어떠했던가. 다시 못해 볼 소중한 경험이다. 이곳이 세계 3대 별자리 관찰 장소 중 하나라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 세상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