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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이 걷던 길, 차마고도

by 하람

차마고도는 중국 윈난성과 스촨성에서 재배된 차와 티베트의 말이 교환되며 시작된 차(茶)와 말(馬)의 길이다. 실크로드보다 오래된 교역로로써 후에는 네팔, 인도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 마방들은 오직 생존을 위해 높고 험준한 산길을 걸었고, 아찔한 협곡을 지나갔다. 나는 청소년기에 역사책으로 만났던 차마고도와 오래전 TV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인사이트 아시아-차마고도>의 그곳이 궁금했다. 내 발로 그 땅을 밟으며 마방들의 수고로움을 직접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트레킹의 시작은 호기로웠다. 그러나 경사 심한 오르막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흙먼지가 올라앉은 검은색 등산화는 뽀얀 회색이 되었다. 스물여덟 번 구부러지며 오른다는 28밴드의 난이도는 듣던 대로 굉장했다. 메마른 땅은 거침없이 흙먼지를 날렸고, 가파른 길로 숨은 턱까지 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8밴드가 끝나는 지점에서 바라본 구름에 둘러싸인 옥룡설산은 신비로웠다.


금사강의 거침없는 물줄기는 ‘상해’와 ‘소주’까지 흘러가며 양자강이 된다는데, 첫날 내 걸음의 끝은 차마객잔까지였다. 객잔에 머물며 오골계 백숙으로 저녁을 먹다가 ‘티베트’과 ‘여강’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고산청보리주를 노루 꼬리만큼 얻어 마셨다. 행복이 몰려왔다. 이런 기분은 고산 트레킹을 끊지 못하고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선생객잔까지 가는 길은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내게는 오직 무념무상으로 걷는 산길일 뿐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리막은 마방이 먹고살기 위해 다니던 애환의 길답게 고행길이었다. 지독한 흙먼지와 너덜 길이 걸음을 방해했고, 햇빛은 사정없이 몸에 꽂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호도협의 물살은 역동적이었고, 경치는 아름다웠다. 영국 BBC에서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 페루의 마추픽추와 함께 세계 3대 트레일로 소개했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겠다. 지친 와중에 마셨던 콜라도 신의 한 수였다. 땀과 먼지에 절은 상태에서 노천에서 구입한 미지근한 콜라는 잊지 못할 음료수가 되었다. 평소에는 거의 마시지 않는 것이건만, 가뭄의 단비처럼 몸에 흡수돼 지친 몸을 되살려주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객잔에 도착해 직접 내려 마신 한 잔의 커피가 최고였다. 수고의 보상으로 충분했다.


옥룡설산은 은빛 용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누워 있는 형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우리는 연중 눈이 쌓여 있어 햇빛에 반짝이면 눈이 부시다. 윈난성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은 이 산을 매우 성스럽게 여긴단다. 옥룡설산이 현세에서는 풍요를, 사후에는 신선세계로 안내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아직도 주봉은 오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내가 올랐던 샹그릴라 코스도 현지인 가이드가 동행해야만 오를 수 있는 코스였다.


샹그릴라는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의《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평생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티베트의 한 마을을 모델로 썼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중뎬'이 바로 소설의 배경인 '샹그릴라'라고 1997년에 발표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001년에는 아예 샹그릴라로 개명까지 했다고 한다.

중국 명대 소설 오승은의 『서유기』도 떠올랐다. 손오공이 하늘나라에서 소란을 피운 뒤 옥황상제의 벌을 받아 감금됐던 오행산. 그 산이 바로 이 옥룡설산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설산소옥(3,800m)이 가까워지자 공기가 급격히 줄어들었음이 느껴졌다. 함께 오르던 이들도 나와 같은 느낌이었는지 더 오르길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갔다. 고산 증세가 약하게 온 듯했다. 때론 빠른 포기가 현명할 때가 있는데 바로 그때였나 보았다. 풍경도 달라졌다. 설산소옥을 지난 후부터는 ‘룽다’와 ‘타르초’가 걸려 있었다. 룽다는 티베트 불교의 경전이 적혀 있는 긴 장대에 매단 깃발을 말한다. 사람들은 룽다가 바람에 흩날리면 온 세상에 경전이 전해진다고 믿었다. 룽다의 파란색은 하늘, 흰색은 구름, 빨간색은 불, 초록색은 바다 그리고 노랑은 땅을 의미한단다. 그렇다면 룽다는 우주의 만물과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타르초 역시 룽다와 의미와 색깔은 같지만 형태가 다르다. 학교 운동장에 걸어놓은 만국기처럼 다섯 가지 색깔이 길게 걸린 것이다.


나는 지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이상향이 이 산속에 있기를 바라며 샹그릴라 코스를 느리게 걸었다. 고도는 계속 높아졌다. 숨이 가빠졌고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여신동(4,060m)을 지나며 나타난 두견화 군락에 반짝 정신이 맑아졌다.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가쁜 호흡에도 웃음이 흘렀다. 천상의 화원인 듯했다. 나는 두견화와 진달래가 같은 꽃이라고 알고 있다. 그랬기에 비슷하지만 다른 꽃이라는 나시족 가이드의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진달래와 두견화가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나의 최종 목적지인 설산아구(4,260m)까지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파른 석회암 길이었다. 경관은 수려하고 장엄했으나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파쇄 돌길은 매우 날카롭고 거칠었다. 나시족 가이드가 나와 보조를 맞춰 걸어주었지만, 호흡은 갈수록 거칠어졌다. 녹초가 된 상태로 설산아구에 도착했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모든 일을 혼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설산아구까지의 나의 걸음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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