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킬리만자로 -
나는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맏며느리 직장인이었다. 그런 까닭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로 남몰래 끙끙대며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시부모님께 어렵사리 길 떠남을 허락받았다. 이때만 해도 비행기 안에서의 소동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떠남이 설레기만 했다.
신비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기내에서도 '킬리만자로'를 향해 가고 있음이 실감되지 않았다. 그러나 곧 현실이 자각되는 사달이 났다. 에어프랑스 기내에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 통로로 나갔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져 눈을 떠 보니 나는 쓰러져 있었고, 두 명의 외국인 스튜어드가 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온몸이 저리고 오한이 심해 말라리아 예방약의 부작용인가 싶었다. 승무원 근무 공간으로 옮겨져 산소마스크를 사용하며 누워서 아프리카로 향했다. 총 16시간을 비행했고,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다시 5시간이 넘도록 버스로 이동해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도착했다.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그러나 보호자가 나 자신이었기에 스스로 컨디션 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의 3대 봉우리는 킬리만자로, 실라, 마웬지이다. 이 중 나의 목적지는 마운틴 킬리만자로였다. 아프리카 최고봉(5,895m)이며 비전문가가 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이곳으로 가기 위해 트레킹 시작점인 마랑구 게이트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그리고 함께 걷게 될 멤버들과 입산 수속을 마쳤다. 나의 멤버는 트레커 17명에 스텝이 52명이었다. 스텝은 요리 팀과 가이드, 포터 등이었다. 킬리만자로를 들고나려면 안전을 위해 입산과 하산신고는 필수이다. 트레커 1인당 두 명의 포터가 동행해야 함도 이곳의 규칙이다.
트레킹은 울울창창한 열대림 걷기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에 나타난 관목 지대는 마음을 메마르게 했다. 흙먼지의 건조함이 갈수록 더해져 급기야 입을 열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낯선 트레커나 포터를 만나면 습관처럼 잠보(Jambo Jambo, 안녕)를 외칠 뿐 무념무상으로 걸었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세네시오 나무 군락지를 지날 때는 걷기가 힘들었다. 이미 고도가 3,000m를 넘어섰기에 호흡 조절이 어려웠던 탓이다. 현지 가이드는 계속 뽈레뽈레(pole pole)를 외쳤다. ‘뽈레뽈레’는 스와힐리어로 ‘천천히 천천히’란 의미의 말이다. 높은 산에서는 고산증세가 오는 것에 대비해 아주 천천히 걸어야 한다. 행여나 몸에 무리가 오는 걸 무시한다면 자칫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뾰족 지붕의 만다라 산장에서 바라본 운해 속의 일몰은 천상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일몰 후에 찾아온 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프리카가 적도를 지나기에 고온의 열대기후라고만 여겼던 나의 무지에 할 말이 없었다. 패딩 점퍼 위에 패딩 조끼를 덧입고 손난로를 쥔 채 동계용 침낭에 들어갔지만 추웠다. 10월의 추위가 실로 엄청났다.
고소 적응을 위해 호롬보 산장에서는 하루 더 머물며 얼룩말 바위(4,050m)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등정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사전 훈련이었다. 흰색과 검은색이 교차되어 있는 커다란 바위벽의 문양은 천연 소금이 바위의 수분과 섞여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어쩌면 과거의 한 시점엔 이 높은 곳이 바다였는지도 모르겠다.
호롬보 산장 이후부터는 가장 큰 문제가 물 부족이었다. 얼룩말 바위를 향해가다가 ‘ Last water point’라고 적힌 팻말을 보았다. 이곳이 식수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라고 했다. 우리 팀의 어시스턴트들과 주방 팀은 여기에서 물을 길어 우리가 머물 키보 산장까지 갖고 간단다. 그 먼 곳까지 물을 지고 가야 한다니 말문이 막혔다.
키보 산장(4,700m)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장이다. 그곳을 향해 메마른 길을 걸었다. 초미세먼지가 폐 속으로 파고드는 것만 같아 넥 게이트로 입과 코를 막았다. 그 찰나에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더니 난데없이 눈으로 변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눈을 맞으며 걷게 될 줄은 몰랐다. 갑자기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추위가 몰려왔다.
아침에 다이아막스 한 알을 삼켰다. 손발이 쩌릿쩌릿하고 뺨이 감전된 듯 우르릉거리는 게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다. 추위도 엄청났다. 키보 산장에 도착해 저녁 식사 후 다시 다이아막스 한 알을 또 먹었다. 다이아막스는 우리나라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 이 약은 비뇨기과 증세 호전 약으로 개발됐지만 고산 증세를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트레커들 사이에서 애용되는 해외의 약이다.
바람도 잠든다는 밤 12시, 요리 팀이 끓여준 수프를 마시고 킬리만자로 정상인 '우후루피크'를 향해 출발했다. 유럽인들은 약 50%가 실패하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80% 정도만 성공한다고 알려진 마운틴 킬리만자로. 새벽 3시에 5,180m의 한스 마이어 동굴을 통과하는데 추위와 호흡 곤란으로 고통스러웠다. 함께 걷던 나의 가이드 ‘무사’가 얼어붙은 손을 계속 주물렀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산소량이 52%밖에 안 된다니 오죽할까마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아침 6시에 5,685m의 길만스 포인트를 통과한 후, 긴장감에 온몸의 솜털이 쭈뼛거리며 곧추섰다. 외발 수레에 실려 내려오는 외국인 트레커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큰 체격의 서양 남성이 의식 없이 축 늘어져 있어 깜짝 놀랐다. 두려웠다. 고산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5,756m의 스텔라 포인트를 지나고, 07시 23분에 킬리만자로의 정상 우후르 피크(5,895m)에 도착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다양한 국가의 트레커들이 서로 축하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나누었다. 만년설을 밟고 있던 나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밟은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눈앞에서 여명이 불타올랐다. 자연인에서 문명인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