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ntor of my naturalist life. She's name is Tasha Tudor.’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녀의 다큐멘터리가 영화로 상영 중임을. 전국의 몇 군데 안 되는 상영관을 찾다 보니 가장 가까운 곳이 서울의 대한극장이었다. 그것도 하루 단 1회뿐이었으나 그녀를 만나러 감에 주저함이란 있을 수 없었다. 만사 제쳐두고 둘째 딸아이와 ITX를 탔다. 익숙한 이름 ‘타샤 튜더’. 그녀는 미국 버몬트주 깊은 산골에서 30만 평의 황무지를 꿈의 동산으로 탈바꿈시킨 정원사이다. 70여 년 동안 100여 권의 그림책을 쓰고 그린 작가이고, 자급자족하며 평생을 물 흐르듯이 살아온 자연주의자이기도 하다. 가슴이 뛰었다. 책으로만 만나던 나의 멘토를 영상이긴 하지만 목소리를 들었고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영화에 빠져들었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 『타샤의 정원』 이후 꽤 오랫동안 나의 짝사랑은 이어져 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녀의 꿈이었던 단순한 삶을 내 삶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실행이 어려울 것 같다. 20세기의 그녀가 19세기의 삶을 살았다고, 디지털시대를 사는 내가 아날로그시대의 삶을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저 흠모의 마음으로 그녀를 존경할 뿐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또 어떠한가.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하고, 어린 시절은 가정부로, 젊은 시절은 농장 아낙으로 살아야 했던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그녀는 76세부터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 100살이 넘도록 그렸다. 92세에는 자전 에세이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도 출간했다.
소박한 일상을 이어가면서도 자기를 잃지 않은 두 할머니의 삶은 상상을 초월한다. 비우는 삶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세월에 순응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타샤 튜더처럼 자기 색깔이 확실한 사람이고 싶고, 모지스 할머니의 인내력은 닮고 싶다.
지금까지의 내 세상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낯빛이 변했고 잠을 설쳤으며 괴로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영혼을 갉아내는 소모전이었다. 극복의 대상이지 원망의 대상은 아니었는데 그 당시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허허롭다. 사람과의 관계가 감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텐데 그땐 그랬다.
일본의 후시하라 켄시 감독이 노 건축가 부부의 일상을 촬영했다. ≪인생 후르츠≫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것 역시 책으로 먼저 만났다. 90세 남편 ‘츠바다 슈이치’와 87세 아내 ‘츠바다 히데코’의 담백한 인생을 잔잔하게 펼쳐내는 영상은 따뜻했다. 마음을 비우면 어떤 삶이 펼쳐지는지 몸소 보여주는 노부부의 메시지는 알아듣지는 못해도 알 수 있는 말이었다.
자연과 공존하는 삶에서 기쁨을 찾는 욕심 없는 이 부부의 삶은 아름다웠다. 형태는 다르지만 타샤 튜더와 모지스 할머니를 생각나게 하고, 자연 속에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던 ‘니어링 부부’를 떠올리게 했다. 혼자 산 날보다 함께 살아온 날이 더 긴 부부의 오래 익은 인생 향기는 소소한 기쁨이었다. 꾸준하면서도 서두르지 않는 시간의 힘을 가르쳐주고, 자기 속도대로 사는 인생을 일깨우는 선생이기도 했다. 마음을 내려놓았기에 가능한 삶이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영상 속에 나오는 이 자막으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우리는 이런 삶을 Slow Life라 부른다. 문명의 이기를 배재한 채 여유롭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목가적인 삶, 바로 내가 추구하는 삶이기도 하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라는데 나는 지고 싶다. 거창한 목표나 계획 없이 마음 따라 살고 싶고, 일과 놀이를 일치시키면서 한 편의 시처럼 바람처럼 느끼며 살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채워 넣기를 반복할지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렇다. 몇 차례 해외를 드나들다 보니 내가 채워야 할 나의 내면에 대한 생각이 계속 변화했다. 욕심낸다고 욕심껏 채워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이젠 비우는 연습을 하며 무탈한 일상이 최고의 날임을 자각해야겠다. 느리게 살며 세상과 소통하는 나 자신에게 셀프 응원을 보낸다.